(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유럽발 금융위기로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고사(枯死)' 위기에 처한 국내 IPO(기업공개) 업계가 최근 정치권에서 제기되는 '경제민주화' 정책에 관심을 쏟고 있다.

올해 들어 대어급 종목의 상장행렬이 뚝 끊긴 상황에서 경제민주화 정책이 현실화될 경우 대기업그룹의 순환출자 구조 해소가 추진되는 과정에서 주요 계열사의 상장이 대거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IPO 업계는 쉽게 시장에 나오지 않는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 물량을 차지하고자 벌써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 순환출자 제한 현실화되면 '현대엠코' 상장 가능성↑ = 최근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는 일부 재벌 총수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경제민주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여당인 새누리당과 야당은 자산총액 합계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의 신규 순환출자 금지와 기존 순환출자 구조에 대한 의결권 제한 등을 주장하고 있다.

만약 이 정책이 실현되면 상당수 대기업은 지배구조 재편작업을 시작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자금 마련을 위해 계열사 상장이 추진될 수 있다.

이동호 신한금융투자 IPO 담당 부장은 "순환출자를 없애면서도 그룹 지배구조를 유지하려면 그룹 내부에서 지분을 주고받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이 때 필요한 자금마련을 위해 계열사를 상장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최근 IPO 업계에서 여러 정황상 상장 가능성을 크게 보는 곳 중 하나가 바로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엠코'다.

최근 제기된 순환출자 해소 법안이 시행되면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는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로 재편될 가능성 크다. 따라서 현대차의 후계자인 정의선 부회장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상당량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현재 정 부회장은 현대모비스 지분은 없고, 현대글로비스(31.88%)와 현대엠코(25.06%) 지분만 다량 보유하고 있다.

결국 정 부회장은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엠코를 이용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얻어야 한다. 특히 현대글로비스가 현대엠코의 2대 주주(25%)인 만큼, 현대엠코 가치를 올려놓으면 현대글로비스 가치와 함께 정 부회장의 전체 자금력은 증가하게 된다.

가치를 올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상장이다. 현대엠코는 그룹의 플랜트 물량을 바탕으로 우수한 성장성을 보이고 있어 상장에 나설 경우 투자자의 관심으로 기업가치는 크게 높아질 수 있다.

무엇보다 건설업체의 경우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하려면 10년 이상 사업을 해야 하는 데 지난 2002년 10월 설립된 현대엠코는 한 달 후면, 이 조건도 충족하게 된다.

A 증권사의 IPO 담당 임원은 "아직 현대차 측에서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지만, 지배구조 재편이 현실화되면 현대엠코의 상장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며 "어차피 지금은 시장이 침체돼 당장 진행할 건수도 없기 때문에 잠재적 고객인 현대차에 대한 영업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대엠코가 현대모비스와 기아차 보유 자사주를 매입하면 정의선 부회장의 지분을 42%까지 높일 수도 있다"며 "이처럼 상장 차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여러 방안 등을 미리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이재용 자금줄 '에버랜드·SDS'도 IPO 후보 = 삼성그룹의 경우에는 올 초 삼성카드 보유 에버랜드 지분을 매각하면서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로 이어지던 큰 틀의 순환출자 구조는 이미 해소됐지만, 여전히 부분적으로 20여 개에 달하는 출자 구조가 존재한다.

또, 최근 정치권은 순환출자 해소와 더불어 보험 등 제2금융권의 제조업체 의결권 제한 등을 골자로 한 금산분리 강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따라서 삼성그룹 역시 이들 법안이 실행되면 지배구조가 개편될 수 있다.

무엇보다 금융사의 의결권 제한이 현실화되면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그룹과 총수일가의 실제 지분율은 8.8%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 특히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의 지분율은 0.57%에 불과해 후계자로서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할 필요성이 더욱 커진다.

B 증권사의 IPO 관계자는 "삼성 역시 지배구조 개편이 진행되면 이재용 사장의 자금줄이 될 만한 계열사의 상장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며 "그 대상으로 가장 주목받는 것이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라고 지목했다.

실제로 에버랜드의 경우 이재용 사장이 최대주주(25.1%)인데다가, 오너 일가 등 삼성그룹의 지분율이 70%에 달해 지배구조가 훼손되지 않으면서 상장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무엇보다 삼성의 실질적인 지주사라는 점 때문에 상장 때 투자자의 높은 관심도 받을 수 있다.

삼성SDS 역시 4조원 수준의 매출에 10% 정도의 영업이익률을 낼 정도로 성장성과 수익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IPO가 추진되면 이 사장의 보유지분(8.81%) 가지만 1조원 가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SDS는 그룹 지배구조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사장으로서는 상장 과정에서 지분을 전부 처분할 수도 있다.

C 증권사의 IPO 담당 임원은 "특히 삼성이나 현대차 계열사의 상장을 주관하면 나중에 다른 영업을 할 때 큰 도움이 된다"며 "이들 업체는 그룹 차원에서 상장이 임박했을 때 불시에 주관사 선정에 나서기 때문에 미리 대비하는 차원에서 영업력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yuj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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