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장용욱 기자 =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각종 규제를 '손톱 밑 가시'라 칭하며 과감한 개혁에 나서자 국내 산업계는 일단 기대감에 차 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지난 두 번의 정권 때에도 초반에 규제개혁을 추진하다가 뒤로 갈수록 흐지부지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 '참여정부'·'이명박정부' 거치며 규제 늘어 = 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규제개혁위원회에 등록된 규제(작년 6월 기준)는 총 1만5천7개로 규제 등록제도가 도입된 지난 1998년 말(1만372개)보다 44.7% 증가했다.

역대 정부별 연평균 규제증감률을 살펴보면 국민의 정부(-6.5%) 시절만 규제가 조금 줄어들었을 뿐, 참여정부(1.8%)와 이명박 정부(8%)를 거치며 규제 수는 오히려 늘어났다.

또,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와 겹치는 작년 1월부터 6월 사이에도 1천93개(7.8%)의 규제가 증가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국민의 정부 출범 첫해인 1998년 말부터 이듬해인 1999년 말까지 약 30%(7천294개)의 규제가 감소했다"며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규제가 의미 있게 줄어들었던 때"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 때는 IMF위기 극복을 위해 국제적 기준을 도입해 규제감축에 나선 덕분에 전 부처에 걸쳐 규제가 상당 부분 폐지된 것으로 평가됐다.

'참여 정부' 들어서도 규제총량제를 최초로 도입하는 등 규제 완화를 일부 시도했다. 하지만 건수 위주로 규제개혁이 수행된 데다 규제개혁 지침이 강제성이 없는 행정지침이어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규제 수도 오히려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 '비즈니스 프랜들리'를 내세워 규제개혁을 위한 전담조직까지 운영했지만, 총리실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등으로 나뉜 추진체계와 다른 정치적 이슈 때문에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동력을 상실한 측면이 있었다.

◇ "말로만 규제개혁, 이제 그만" = 이처럼 앞서 두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규제에 대한 기업인들의 체감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전경련이 작년 새 정부 출범 직후 494개 회원사의 규제담당자 747명(307명 응답, 응답률 41.1%)을 대상으로 조사한 '규제개혁 체감도'는 92.2로 나타났다. 규제개혁 체감도는 100 밑으로 떨어질수록 불만족 정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인들은 총 9개 분야 중 '환경·에너지' 분야를 제외한 8개 분야에서 규제개혁이 불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특히 규제개혁 성과가 불만족스러운 가장 큰 이유로 '형식적 규제완화(70.6%)'를 꼽았고, 그 뒤로 '규제 집행 시스템 미비(10.1%)'와 '관련 공무원의 규제완화 내용 미인지(8.3%)', '고시·조례 등 하위 법령 미정비(7.3%)' 등이었다.

기업인들이 형식적 규제완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기업도시' 프로젝트다.

기업에 투자 편의를 제공하며 지역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취지로 참여정부 때부터 이 프로젝트가 추진됐지만, 실질적인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기업도시는 당초 충주와 원주, 태안, 영암ㆍ해남, 무주, 무안 등 6곳이 기업도시가 선정됐다.

하지만 이중 충주 정도를 제외하고는 사업 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무주와 무안은 사업지정이 해제됐고, 나머지 3곳은 사업진행 부진한 상황이다.

기업도시 입주를 추진했던 기업 관계자들은 사업부진의 원인으로 각종 규제와 지원책 부족 등을 꼽았다.

한 관계자는 "기업도시의 지정ㆍ개발, 분양, 운영ㆍ보유에 68개 법률, 129개 규제 등이 적용돼 인허가에 과도한 기간과 비용이 소요된다"며 "조세감면과 국고지원 등이 부족해 투자유도가 원할하지 않은 측면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 "대통령보다 말단 공무원이 움직여야" = 산업계는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규제개혁이 신속히 진행되려면 대통령이 움직이는 것만으로 부족하다고 말한다.

다른 기업 관계자는 "위에서 아무리 규제완화를 외쳐도, 현장에서 실제 일을 하는 말단 공무원부터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전경련 494개 회원사 규제담당자들은 규제개혁을 위한 요구 사항으로 '법령 개선 등 신속한 후속조치(26.1%)'와 '효율적인 집행체계 구축(24.3%)', '공무원의 규제개혁 마인드와 태도 개선(20.1%)' 등을 제시했다. 하나같이 규제개혁을 직접 실행하는 실무조직이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주문이다.

또, 시급히 개선해야 할 분야로 '담합·공시·하도급 거래 등 공정거래(19.8%)'와 '환경 및 에너지(15.1%)', '기업지배구조(14.1%)' 등을 꼽았다.

전경련 관계자는 "각 지방에서 하는 사업의 경우 중앙정부보다는 지자체가 사업자와 직접 협의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며 "또, 새로운 규제비용이 발생할 경우 최소한 이와 상응하는 규제가 철폐토록 하는 정책 도입도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 정부, '손톱 밑 가시' 제거 본격화 = 이처럼 산업 현장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새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더 적극적으로 규제완화에 대한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작년 9월 국무총리 소속으로 정부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가 공동으로 민관합동규제개선추진단을 설립한 데 이어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규제개혁 상황을 점검하고 나섰다.

실제로 박 대통령은 지난 20일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를 7시간 넘게 주재했다.

이처럼 범정부 차원에서 규제완화에 집중한 덕분에 새 정부 출범 후 1년여 만에 총 1천933건의 기업현장애로를 발굴해 이중 838건(수용률 43.4%)을 개선했다.

정부는 이에 그치지 않고 규제비용총량제 도입과 핵심·덩어리 규제 개선에 가중치를 부여해 2016년까지 20% 규제 감축, 합리적 규제 민원 불수용 시 3개월 내에 관련 부처의 소명, 신설규제에 대한 네거티브 방식 도입 및 일몰제 적용, 기존 규제 전체의 50%에 대해 현 정부 임기 내 일몰제 설정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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