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대대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앙숙'으로 통한다. 한국은행의 목적과 기능, 권한 등을 정하는 한국은행법 개정을 놓고도 정부인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싸움을 벌인 사례도 여러 번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행 총재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경우도 있었다.

거시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도 두 기관은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웠다. 이런 이유로 통화정책과 환율정책 등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갈등을 보인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은행이 금융 불균형과 인플레이션 등을 우려하며 기준금리를 올리려고 할 때마다 기획재정부는 섣부른 경기 낙관론과 기준금리 인상 조치가 경기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라고 반박하기가 일쑤였다.

가까운 사례로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당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금리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시그널을 보이자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에 기획재정부 차관이 직접 참석할 수 있도록 규정한 열석발언권을 근거로 금리정책에 관여하는 초강수를 뒀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은행의 독립성 훼손을 이유로 기획재정부의 열석발언권 행사를 재검토하라고 요구했으나, 기획재정부는 IMF의 권고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는 기획재정부가 금리 인상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과거 금리 인상을 놓고 이렇게까지 충돌했던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최근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자산시장 과열에 대해 경고성 발언을 보내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호응하는 모양새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촉발된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유동성 공급 조치들이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는 만큼 앞으로는 무리하게 빚내서 주식이나 주택에 투자하는 행위를 삼가라는 경고했다. 지난 11일 이주열 총재는 한국은행 창립 71주년 기념사에서 통화정책의 정상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주열 총재는 "경제주체의 위험 추구 성향이 강화되면서 실물경제에 비해 자산가격이 빠르게 상승했고, 그 결과 자산 불평등이 심화했으며 민간부채 규모가 크게 확대됐다"고 지적했다. 사실상 기준금리 인하 등 비상시국에서 이뤄진 각종 조치의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전일 국회 대정부질문에 답변자로 나선 홍남기 부총리도 "금리 문제에 대해서는 한은이 (인상) 신호를 여러 번 표한 바 있다. 유념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거들었다. 홍 부총리는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가계부채 부담을 언급하면서 차주들도 금리가 오를 수 있다는 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부겸 총리도 한국은행이 연내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하는 뉘앙스를 표시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금융시장은 물론 정부도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을 일정부분 용인한 셈이다. 물론 한국은행이 뒤늦게 자산가격 급등을 이유로 금리 정상화를 언급하고, 기획재정부도 한국은행에 맞장구를 치는 건 백약이 무효인 부동산 과열을 놓고 집값 거품을 방치했다는 오명을 쓰지 않겠다는 두 기관의 셈법도 작용하고 있다는 평가다. 어떤 이유에서든 과거에 보여줬던 모습과 달리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모두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들도 금리 인상이 예상보다 빨라질 가능성까지도 염두에 두고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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