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저금리의 역습이 시작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불황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낮추면서 돈을 찍어냈으나, 저금리 현황이 장기화하면서 최근에는 저금리의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작용이 오히려 부각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급등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최근에는 물가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통계청이 지난 3일 발표한 '7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 상승했다. 지난 4월에 2.3%의 상승률을 기록한 이후 4개월 연속으로 한국은행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2%를 넘어서고 있다. 특히 생활물가지수는 3.4%로 지난 2017년 8월의 3.5% 이후 최대 오름폭이다.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근원물가도 1.7% 상승률을 기록하면서 3년 11개월 만에 최대폭을 기록했다.

고물가 현상이 전개되면서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도 꿈틀대고 있다. 한국은행이 조사하는 기대인플레이션율은 지난해 7월 조사에서 1.7% 수준에 그쳤으나 올해 7월 조사에서는 2.3%를 기록했다. 이 수치는 지난 2월에 올해 들어 처음으로 2%대로 상승한 이후 6개월째 2%대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정부나 한국은행이 당초 예상했던 물가 수준을 계속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하반기에는 물가가 안정될 것으로 장담했다. 한은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하반기에 들어선 7월에도 물가가 예상 수준을 웃돌면서 당국의 전망이 무색해졌다. 더욱이 이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심리를 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물가를 둘러싼 대외여건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자칫 고물가가 고착될 수 있다는 의미다.

흔히 인플레이션을 '소리 없는 도둑'이라고 부른다. 개인들이 보유한 현금과 같은 금융자산의 가치를 한낱 휴짓조각으로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순간에 보유한 자산가치를 떨어뜨리는 게 흡사 돈을 훔쳐 가는 것과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아무리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더라도, 더 많은 월급을 받더라도 물가 상승률이 그보다 더 높아지면 실제로 벌어들이는 월급은 깎이는 것이랑 같다.

중앙은행의 가장 큰 역할은 '소리 없는 도둑'을 잡는 일이다. 여러 가지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종합적이고 평균적으로 볼 수 있는 개념이 물가인데, 다른 의미에서 보면 결국 돈의 값이다.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의 가장 중요한 책무인 통화의 가치, 즉 물가 안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은행이 공개한 지난 7월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보면 금통위원들의 우려가 성장에서 물가로 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다수의 금통위원이 기존 통화정책기조를 '가까운 시일 내에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8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 인상을 예상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비해 기준금리를 인상한 국가도 여럿 있다. 멕시코 중앙은행은 선제적인 인플레이션 억제를 기준금리를 인상했고, 브라질과 러시아 등도 비슷하다. 캐나다도 테이퍼링에 들어갔고, 아이슬란드와 헝가리, 체크 등 일부 유럽국가도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한국은행은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작년 3월 기준금리를 연 1.25%에서 0.75%로 0.50%포인트 인하했다. 같은 해 5월에 0.25%포인트 추가로 내린 뒤 1년 2개월 이상 연 0.50%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물가 상승률이 높아지면서 실질 금리는 더 떨어졌다. 실제로 기준금리에서 물가 상승률을 뺀 실질 기준금리는 7월에 마이너스(-) 2.1%에 달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목표제를 도입한 이후 가장 낮다. 통화당국이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실질적인 통화완화의 정도는 더욱 커진 셈이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저금리 환경에서 싼값에 돈을 빌려 썼으나 금리가 오르면 대출에 부담이 커지고 가계부채 부실화를 불러올 가능성도 커졌다. 이른바 '영끌'과 '빚투' 등으로 신용대출이 급증하면서 은행권 가계대출도 올해 상반기에만 41조6천억원 늘었다. 상반기 증가액으로 역대 최대다. 그동안 경제주체들이 저금리의 혜택을 톡톡히 누렸다면 이제는 저금리로 풀린 유동성이 촉발할 수 있는 부작용, 나아가 역습에 철저하게 대비해야 할 때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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