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시장은 우리를 덩치만 큰 공룡으로 보고 있고, 공룡은 결국 멸종했다"고 지적했다. 조용병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그룹사의 디지털 플랫폼 전반을 '바르게, 빠르게, 다르게' 운영해 빅테크나 플랫폼 기업과의 경쟁에서 앞서 나가자"고 독려했다. 마치 약속한 것처럼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들이 신년사에서 '생존을 위한 디지털'을 주창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맞물러 은행권 핵심 업무인 대출, 예적금, 펀드 판매 등이 모두 비대면 방식의 디지털 형태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하나은행에서 이뤄진 신용대출좌수(3분기까지 누적) 중에서 89.1%가 비대면으로 진행됐다. 펀드는 좌수 기준으로 92.7%가 비대면으로 팔렸다. 같은 기간 우리은행에서도 적립식예금의 89.6%, 펀드 판매의 82.6%가 비대면으로 판매됐다. 작년 신한은행에서 판매한 수신상품과 여신상품의 70% 정도가 디지털 형태로 이뤘다. 은행의 핵심 영업 채널이 기존의 지점 창구에서 디지털로 옮겨갔다는 뜻이다.

비대면과 디지털 부문을 통한 판매채널 강화가 전반적인 비용 절감을 통한 수익성 제고로 해석되면서, 모든 금융권이 조직과 인력을 재편하고 디지털 부문의 역량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디지털이 고객과 접점을 높이고 고객의 편의성도 제고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디지털화 자체가 은행 경쟁력을 가늠하는 중요한 척도가 됐다. 최근 은행들은 경영실적을 발표할 때마다 주요 플랫폼 서비스의 누적 가입자 수나 한 달 동안 이용한 순수한 이용자 수를 나타내는 지표인 MAU(Monthly Active Users), 비대면 상품의 가입 고객 수, 예대출 상품이나 펀드 판매에서 비대면 상품이 차지하는 비율 등을 디지털 부분 현황이란 명목으로 부각시키는 것도 이런 이유다.

무엇보다 디지털을 무기로 하는 플랫폼 경제는 1위 기업이 업권 전체를 독식하는 이른바 승자 독식 현상을 주요한 특징으로 한다. 그동안 상위 3~4위 은행이 공존하면서 은행업권을 나눠 가졌다면, 앞으로 디지털 시대에는 자칫 2위 은행도 금융소비자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주요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이 다른 은행뿐 아니라 빅테크 등 플랫폼 기업이나 인터넷전문은행과 디지털 경쟁에서 뒤처지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일부에서는 비대면 금융환경으로의 전환이 금융소비자의 권한을 침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나, 금융의 디지털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이제 은행들이 빅테크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고객관리의 노하우와 금융상품 데이터를 디지털에 녹여내는 숙제를 풀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별 금융소비자들이 보다 편리하게 자신에 최적화된 금융상품을 비교·조회할 수 있는 서비스를 활성화하는 등 고객 중심의 종합플랫폼도 구축해야 한다. 금융지주 회장들의 지적처럼 디지털 부문의 역량은 상품 한두 개를 더 파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생존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귀결될 수도 있다. (정책금융부장 황병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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