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의 기능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능이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고, 기준금리를 올리고 내려 실물 경제의 경기 변동성을 완화하는 것이다. 기준금리를 변동시키는 기능에는 극단적인 상황에 대응하는 역할도 포함된다. 바로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다. 물가 상승률이 과도하게 높아질 때 이를 잡을 수 있는 기능은 중앙은행 이외에는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가장 민감하게 보는 경제지표는 국내총생산(GDP)이 아닌 물가 상승률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는 저물가 국면이 장기화되면서 이러한 중앙은행의 물가 안정 기능은 간과됐다.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위기 이후 막대한 유동성이 풀렸고 여러 외부 요인들이 중첩되면서 2021년 하반기부터 물가 상승률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었다. 그래서 우리는 신조어들을 경험했다. 보통 금리를 한 번 인상할 때 0.25%p가 의례적이었으나, 이제는 빅 스텝(Big Step, 0.50%p 인상), 자이언트 스텝(Giant Step, 0.75%p 인상) 등이 익숙해졌다. 그럴 때마다 시장은 요동쳤다. 어찌 되었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중앙은행의 의지가 시장에 확실히 전달된 것은 분명하다. 시장의 관심은 그다음이 어떤 상황일까에 모여있다. 그리고 미묘하지만 중앙은행이 시장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의 조짐도 관찰되고 있다.

우선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이 주목하는 지표인 물가 상승률에 대한 전망을 보자. 인플레이션은 거의 갈 때까지 다 갔다. 미국의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6월 전년 같은 달보다 9.1%에서 7월에 8.5%로 낮아졌다. 최근 어느 나라든 물가에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원자재 가격의 흐름을 보면, 주요한 원자재 가격의 평균치를 구하고 코로나 위기 직전 가격을 100p라 했을 때, 올해 3~4월경 200p 정도까지 올랐다. 여기가 가격이 가장 높았던 지점이고 최근에는 150p 정도로 낮아진 상황이다. 또한 최근의 150p의 가격 수준은 1년 전과 비슷하다. 따라서 앞으로 수입 물가의 상승세는 확연히 꺾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원자재 가격이 공산품과 서비스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시차 효과로 물가는 증가세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되었든 국내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요인인 수입 물가 급등이라는 요인은 시간이 갈수록 그 영향력이 반감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미국 소비자물가는 지난 6월이 상승률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준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국도 7월(전년 동월 대비 6.3%)이거나 8월 중 물가 상승률이 가장 높은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즉 인플레이션은 정점을 지나고 있다.

둘째, 그러면 금리 인상이 지속되는 기간, 다시 말하면 금리 정점도 조만간 도래할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다. 여러 가지 시장의 대외 여건들과 과거의 통화정책 경험을 가지고 단기적인 통화정책의 방향과 강도를 예측해 보면, 가장 큰 흐름에서 기본적으로 올해 연말이나 내년 초까지가 금리 인상이 지속되는 기간으로 생각된다. 비록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지났다고 해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나 한국은행 모두 기대인플레이션이 높아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인상 기조는 이어질 것이다. 다만 지금부터는 금리 인상 속도가 완만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코로나 이전 수준의 기준금리를 넘어서 있고, 미국도 한국도 자산시장(부동산 및 주식 시장)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공개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록을 보면 인상 속도 조절에 대한 발언이 나오는 것으로도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FOMC 내에 물가 상승률 2%까지는 금리 인상을 빠르게 가져가야 한다는 매파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9월 회의부터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인지는 불확실해 보인다. 국내 상황으로 한정해 본다면 앞으로 기준금리를 0.25%p씩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에 무게중심이 실려 가는 분위기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들어갔고 가계부채 증가세도 확연히 꺾여 있는 상황이다. 또한 사회 내 취약차주의 이자 부담 급증 이슈가 부각되면서 부채 탕감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의 속도가 조절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은행이 앞으로 추가적인 빅스텝을 할 명분을 찾기 힘들다.

셋째, 아직은 먼 이야기일 수 있지만, 금리 정점 이후 즉 2023년 통화정책의 방향은 어떤 흐름을 가질 것인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언급했던 전제들이 들어맞는다면 금리 고점은 빠르면 2022년 말에서 2023년 초, 늦어도 2023년 상반기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금리가 정점을 형성했다고 해서 바로 인하하는 국면으로 진입한다고 볼 수는 없다. 과거의 경험을 보면 금리 수준이 정점을 형성하고 하락기로 넘어가는 데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된다.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갑자기 터졌던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는 정점을 형성하고 바로 기준금리가 인하된 적도 있었다. 2008년 8월 5.25%로 인상한 뒤 불과 2개월 만인 2008년 10월 4.25%로 1%p 급락시켰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는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다. 예상치 못한 미국 금융시장의 위기에 어쩔 수 없이 빠르게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편, 2011년 6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3.25%로 인상한 뒤 1년 1개월여 동안 고금리를 지속하다가 유럽 재정위기가 부각되면서 2012년 7월 3.0%로 인하한 적이 있다. 또 다른 사례는 2018년 11월 1.75%로 금리를 인상한 뒤 8개월 만인 2019년 7월에 미·중 무역분쟁,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경기 침체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기준금리를 1.5%로 인하한 적도 있다.

세 가지 케이스의 공통점은 대외적인 충격이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금리가 인하 기조로 들어섰다는 점이다. 금리 수준을 결정하는 데 있어 오로지 시장과 경제만을 고려한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금리가 인하 기조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나름의 명분이 필요하다. '통화정책(通貨政策)'은 '정책(政策)'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정책'의 의미는 '정부의 정치적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방책'이다. 즉 통화정책은 여론의 이해와 지지를 얻어야 하는 고도의 정치행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금리 인하는 확실히 경제에 큰 충격을 줄 만한 사건이 발생해야 가능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대규모 확전, 세계 경제의 심각한 동반 경기 침체, 국내 가계부채 부실화 급증과 금융시스템 불안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리스크 요인들 모두에 대해 아직 그 실현 가능성을 가늠하기에는 시기상조로 보인다. 국내 정치 일정이 금리 인하 시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본다. 이제 2023년 하반기부터 22대 국회의원 선거(2024년 4월 10일)를 준비하는 총선정국으로 들어선다. 그러나 이때의 한국 경제 상황은 그다지 밝지 않아 보인다. 주요 국내외 기관들이 내년 경제 상황을 올해보다 좋지 않을 것이라고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 정책의 무게중심이 경기부양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특히 부동산시장의 냉각과 고금리에 따른 가계의 높은 원리금 상환 부담을 고려한다면 개인적으로는 금리 인하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극단적인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통화정책에 대한 예측이 얼마나 정확성을 가질 수 있을지는 보장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경제지표와 시장 가격이 사이클을 가지는 것은 분명하기에, 그 사이클 곡선의 변곡점과 전환점을 가늠해 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물론, 다양한 변수들이 등장하면서 시장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겠지만, 그래도 끊임없는 합리적 사고를 통해 실물 경제와 금융 시장의 방향성에 대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경로를 찾아내려 노력하는 것이, 극단적 불확실성 시대를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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