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환율이 상승하면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고물가 시기에 고환율은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 8월 수입물가 상승분 중 약 60% 이상이 환율 요인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고환율을 방치할 수는 없다. 한국은행도 금리를 지속적으로 인상하며 원화의 가치 상승을 도모하고 있고, 정부는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나 조선사의 선물환 수요 등의 대규모 자금이동이 서울외환시장에 충격을 주는 것을 막기 위해 장외거래를 유도하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환율 상승 강도는 만만치 않다. 연초 1,192원에 불과했던 달러-원 환율은 종가 기준으로 지난 6월 23일 1,300원 선을 돌파했으며, 9월 22일에는 1,400원 선도 돌파했다. 그동안 외환당국의 여러번의 구두 개입이 있었고 직접적인 시장 개입도 있었다고 추정되나 환율은 당국의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최근 흔히 언급되는 것으로 이런 고환율의 원인이 미국의 정책금리가 한국의 정책금리를 역전한 데에 있다는 주장이 있다. 교과서적인 설명이다. 금리가 낮은 곳에서 금리가 높은 곳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원화의 가치가 바닥을 치는 지금 국내에 들어온 외국인 자금이 엄청난 환차손을 입고 해외로 빠져나갈 수는 없다. 특히, 시장별 장기적인 포트폴리오구조 차원에서 들어와 있는 투자자금이 단기간의 환율 변동으로 철수하는 것도 생각하기 어렵다.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매도가 어떻다는 것은 시장에서 주식을 팔아 현금을 보유하거나 다른 금융상품으로 전환한 것일 뿐 우리나라를 빠져나갔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금리 역전이 고환율의 원인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면 지금 고환율의 원인은 무엇일까. 과거 미국의 정책금리가 한국의 정책금리를 역전했던 시기를 보면 첫 번째 사례는 1996년 6월에서 2001년 3월이다. 이 기간 미국 정책금리는 한국보다 최대 1.5%포인트 높았다. 당시 환율은 1997년 10월 일평균 926원에서 급상승해 같은 해 12월에 1,499원(일간 기준 최고치는 12월 23일 1,962원)에 달했다. 이후 약 1년 동안 1,300원대 이상을 유지하다가 1998년 11월에 들어 1,200원대 이하로 안정화됐다. 두 번째 시기는 2005년 8월에서 2007년 9월의 기간이다. 이때 미국금리는 한국금리에 대해 최대 1.0%포인트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 기간의 환율은 2005년 9월 일평균 1,029원에서 계속 하락해 2007년 9월에 931원까지 떨어졌다. 가장 최근 사례는 2018년 3월에서 2020년 2월까지의 기간이다. 최대 금리 격차는 약 0.9%포인트였으며 이때 환율은 일평균 1,071원에서 1,195원으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세 사례 중 두 번에서 정책금리 역전이 있을 때 환율 상승 압력이 있어 보이기는 하나, 여기서 외환위기 사례는 금리 격차보다 1997년 11월 이후 한국 정부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대외신인도가 급격히 악화된 데에 더 큰 원인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당시 다른 통화들이 큰 폭의 약세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책금리의 역전이 환율 급변동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따라서 과거 환율 급등은 실제 글로벌 자금이 한국 시장을 빠져나가야만 했던 급박한 상황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한국을 포함해 동아시아 국가들의 디폴트 우려가 심각했기 때문에 자금이탈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한편,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제로금리를 유지했음에도 즉, 한국금리가 미국금리보다 높았음에도 환율이 급등했던 새로운 사례는, 미국 내 급박한 상황에 원인이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금융시장과 주택시장이 폭락하고 리먼브라더스(Lehman Brothers) 등 굴지의 금융기관들이 줄도산하면서 미국 내 긴급한 유동성 수요가 있었을 것이고, 그것이 우리나라는 물론 주요 국가에서 달러화가 빠져나갔던 원인이 됐을 것이다.

요약하면 이번 환율 상승은 금리 역전이 주된 원인은 아니다. 글로벌 강달러에 따른 가수요가 끌어올리는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올해 연말이나 내년초까지 고환율이 유지되다가 이후 하향 안정화될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특히 이 시기는 연준 통화정책방향의 분기점과도 맞아떨어진다.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점도표 중간값이 6월보다 크게 높아져 이슈가 됐지만,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바로 금리 수준 전망치가 2022년 말 3.4%에서 2023년 말 3.6%로 거의 비슷하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연준은 올해 연말이나 내년 연초까지 금리를 올리고 2023년에는 더 이상 올리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금리를 떨어뜨리진 않지만 지금까지 환율시장 불확실성을 유발했던 주된 요인인 파월 리스크는 없어진다는 의미다. 따라서 올해를 넘어가면 1,200~1,300원 범위를 향해 환율이 완만하게 안정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고환율 케이스를 제외하고 과거의 사례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미국의 빠른 금리 인상이 시차를 두고 환율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고민하게 한다. 오히려 미국금리가 급격하게 내려갈 때 달러-원 환율이 급등하는 사례가 우려된다. 첫 번째가 닷컴 버블 붕괴의 시기인데, 당시 환율은 외환위기 충격에서 반발짝 정도 벗어나 1,100원대로 안정돼 있었으나 닷컴 버블 붕괴와 911사태로 미국금리가 수직 낙하하면서 불과 몇 개월 만에 1,300원 대로 급등했다. 두 번째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로 연준이 정책금리를 제로까지 내리는 가운데 환율이 900원대에서 1,400원대로 급등한 적이 있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연준의 고금리정책이 미국 내 버블을 붕괴시키는 원인이 됐다는 점이다. 버블이 붕괴되면 미국 내 유동성 경색이 나타나고 달러화에 대한 실수요가 급증한다. 따라서 지금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자칫 미국 금융시장의 경색으로 이어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번 달러-원 환율의 랠리는 1차 파동으로 곧 마무리될 수 있지만, 시간이 흐른 어느 시점에서 미국 시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연준이 갑자기, 그것도 빨리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되면 환율이 급등할 수도 있다. 나아가 만약 지금 외환시장이 미국 경제와 미국 금융시장의 위기(버블의 붕괴)라는 중기적 관점의 유동성 경색 상황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의 고환율 문제는 간단치 않을 수 있다.

어쨌거나 환율이란 양국 경제의 건전성에 의해 결정된다. 대외적인 요인이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한국 경제의 건전성, 즉 재정수지, 무역수지, 인플레이션, 가계와 기업 부채 등의 수준이 통상적 범위 내로 들어온다면 원화가 심각한 약세를 보일 이유는 없다. 적절한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펼치고, 산업 경쟁력 강화를 통해 수출의 외연을 확대하면 된다. 민간부채는 급격한 자금경색이 나타나지 않도록 연착륙시키는 노력을 지속하면 된다. 최근 사이비 세객(說客)들이 침소봉대해 제2의 외환위기를 주장하는 세태가 개탄스럽다. 지금은 그런 소설에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시장을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볼 수 있는 냉정한 시선이 필요한 시간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이사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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