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근 '빌라왕 사건'을 계기로 전국적으로 역전세와 깡통전세 등 전세를 둘러싼 공포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저금리를 계기로 폭등했던 매매가격과 전셋값의 거품이 일부 꺼지면서 전세 관련 문제가 부동산이나 금융시장은 물론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대규모 전세 사기 사건으로 취약계층이 고통을 받는 만큼 보다 적극적인 피해 대책과 법률지원, 처벌 등을 당국에 주문했다.

사실 전세제도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임차인(세입자)은 한번 지불하면 임대인(집주인)의 돈이 되는 월세와 달리 전세대출을 받더라도 빚을 갚아 나가면 결국 전세보증금은 나중에 집을 살 때 활용할 수 있는 목돈이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처럼 서민과 실수요자를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면서 전세는 매매와 달리 투기적인 수요가 크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최근처럼 단기간에 걸쳐 전셋값이 폭락하는 현상을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초저금리로 부동산시장, 특히 전세시장으로 과도한 유동성이 공급되면서 주택가격과 전셋값이 터무니없이 높아졌다. 그리고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꺼지면서 그 부작용이 매매가격과 전셋값 폭락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민들의 주거지원과 주거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긍정적 측면이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몇 년 사이에 금융권을 중심으로 전세자금대출이 크게 늘었다. 사실상 전세 자체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이뤄지는 일종의 사금융 성격이 강한데, 여기에 전세자금대출이라는 부동산 관련 대출이 동시에 급증한 셈이다.

문제는 임차인의 전세보증금과 전세담보대출이 한국사회의 뿌리가 깊은 부동산 불패론과 맞물리면서 소위 임대인의 '갭투자(전세를 낀 주택매입)'와 같은 부동산 투자자금으로 고스란히 활용됐다는 점이다. 결국 저금리의 고착화로 과거와 비교해 용이해진 전세자금대출이 전셋값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뿐 아니라 전세자금대출로 인한 전셋값 상승은 일부 임대인의 갭투자에 유리한 환경으로 이어졌다. 또 전세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활용해 부동산 가격상승에 베팅하는 일부 임대인들의 갭투자 수요가 맞물려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불쏘시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최근 전세제도나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제도 정비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부에서는 임대인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도록 전세보증금 반환 대출을 보다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출규제 완화는 근본 해결책이라기보다 부동산시장에 잔뜩 낀 거품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주택가격과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는 지금이야말로 그동안 무차별적으로 늘어났던 전세자금대출의 문제를 손질해야 하는 적기가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전세자금대출이 갭투자의 원천으로, 부동산 투기용 대출로 활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세자금대출을 청년이나 서민층과 같은 주거 취약층에 한정하고, 전세자금대출에 대해서도 주택담보대출과 마찬가지로 원리금 상환을 유도하거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에 포함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만 전세보증금과 전세대출이 갭투자로 악용되는 현상을 방지하고, 부동산 가격하락으로 생기는 깡통전세의 공포를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다.





전세자금대출 등에 대한 제도적인 토대도 마련해야 한다. 최근 전세 공포가 커졌으나 국내의 전세보증금은 물론 전세자금대출의 정확한 통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 10월 기준으로 전세자금대출은 171조9천억원 수준이다. 전체 가계대출의 16%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국가 공식통계가 아니라 한국은행이 시산한, 즉 시험적으로 계산한 수치다. 전세보증금은커녕 전세자금대출에 대한 공식통계조차 없는 상황에서 전세자금대출의 오남용을 진단하고 부작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게 가능할까 싶다. (취재보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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