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지난 2013년 6월 17일 오전 7시 반. 당시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여의도 렉싱턴호텔로 김덕중 국세청장과 백운찬 관세청장을 불렀다. 이른 아침에 세금 징수를 집행하는 기관의 수장들을 오라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세금을 더 효과적으로 걷을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지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박근혜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올랐던 '지하경제 양성화 방안'의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증세 없는 복지'를 선언했던 박근혜 정부의 복지 재원 마련의 최전선에는 '지하경제'가 있었다.

[그래픽] 국세수입 현황
(서울=연합뉴스) 원형민 기자 = 31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국세수입 현황에 따르면 올해 1∼2월 국세수입은 54조2천억원으로 1년 전보다 15조7천억원 감소했다. circlemin@yna.co.kr 페이스북 tuney.kr/LeYN1 트위터 @yonhap_graphics

박근혜 정부는 국세청과 관세청은 물론 금융위원회 산하의 금융정보분석원(FIU)까지 동원했다. 의심 거래 정보나 고액 현금거래정보 등을 통해 탈세와 탈루 혐의를 국세청 등이 조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세무조사와 관세조사 등이 이전보다 강화되면서 기업들은 경영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기 시작했다. 현오석 부총리가 국세청장과 관세청장을 소집한 것도 두 마리 토끼(세수 확대+기업 불만 축소)를 잡기 위한 대책 마련을 위해서였다.

증세 없는 복지를 추진하기 위한 재원 마련을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당시 더 걱정해야 할 것은 바로 '세수 펑크'였다. 2012년에 2조8천억원이던 세수 결손액은 2013년 8조5천억원으로 불었고, 2014년에는 10조9천억원으로 급증했다. 3년간 무려 22조원에 이를 정도로 세수 펑크 상황은 심각했다. 경기 상황은 고꾸라지는데 어디에 있을지도 모를 돈을 찾는 데만 매몰돼 있었다.

그런데 시간은 흘러 윤석열 정부에서도 세수 펑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기재부가 매달 내놓는 '월간 재정 동향' 자료를 보면 올해 들어 2월까지 누적 국세 수입은 54조2천억원으로 1년 전과 비교해 15조7천억원이 적었다. 연초부터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한 것은 초유의 상황이다. 통상 매년 경제 규모가 커지고 소득과 지출 규모도 늘어나는 것을 고려할 때 정부가 거둬들이는 세금 역시 늘어나는 게 통상적이다.




새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처럼 대규모로 세금이 덜 걷혔다는 것은 그만큼 경기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경제위기 상황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현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휩쓴 2009년, 코로나19에 따른 경제 위기 상황인 2020년에 이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현재와 같은 추세가 올해 말까지 이어진다면 윤석열 정부는 2년 연속 세수 펑크 사태를 맞게 된다. 세금이 덜 걷힌다는 것은 그만큼 정부의 경제운용을 위한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경제 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에는 경제가 매우 힘들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하반기에는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경기 흐름이 상저하고를 보일 것으로 예측한다. 하지만 예측은 예측일 뿐. 경기 상황이 정부의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는다. 세수의 기반이 되는 법인세와 소득세, 부가가치세 및 자산에 부과되는 각종 세금이 제대로 걷힐 수 있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기업들은 경기둔화를 넘어 경기침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현 상황을 판단한다. 코로나19 시기 보였던 때아닌 실적 호황은 이제 끝났다고 본다. 기업이 돈을 벌어야 세금도 늘어날 텐데 반대로 갈 공산이 크다. 언제 끝날지 모를 금리 인상에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직장 소득자들의 불만도 크다. 실질 소득은 줄어든 것과 다름없는 데 유리알 지갑에서 빠져나가는 돈은 그대로다. 당연히 소비가 늘어날 리 없다.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다. 금융시장의 불안은 더 깊어지고 있다. 은행 위기가 초래한 자산시장의 불확실성은 투자심리를 극도로 위축시킨다. 정부의 전방위 규제 완화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 냉각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온통 세금이 덜 들어올 수밖에 없는 상황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정부는 부동산 보유세와 법인세를 깎아주기로 했고, 반도체 산업 등에 대규모 세금 혜택을 주기로 했다. 세수 기반도 좋지 않은 셈이다.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돈을 덜 쓰든지 빚을 더 내든지.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고꾸라지는 경기를 살려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서든 쓰기로 한 돈은 써야 한다. 성장률을 포기할 각오라면 씀씀이를 줄일 수 있지만, 웬만한 뱃심이 아니면 힘들다. 지출하겠다고 계획을 세워 받아놓은 예산을 줄일 방법은 없고 결국 쓰지 않는(불용) 방법을 택해야 하지만 그에 따른 후폭풍은 만만치 않다. 그렇다고 '건전 재정'을 앞세운 정부가 빚을 내기 위한 추경에 나설지도 의문이다. 적자 국채라면 손사래를 치는 재정 관료들이 이에 호락호락 응할 리도 없다. 꼬인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문제가 복잡해질 수록 탄력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된다는 갇힌 시각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한다. 재정 당국의 실력을 가늠할 시간이 돌아왔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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