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최근 경제·금융계에서 관심을 끄는 이슈 중 하나는 일본의 '부활'이다. 흔히 우리의 뇌리에 강력하게 새겨진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으로 대변된다. 그도 그럴 것이 19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5% 가까운 성장을 하던 일본은 1990년대를 기점으로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더니 이후에는 사실상 성장이 멈췄다. 2016년 이후에는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던 일본이 올해 1분기에는 전분기대비 0.4% 성장하는 '기적'을 보여줬다. 경기의 선행지표로 인식되는 주가는 소위 버블경제가 무너진 이후 3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5일 닛케이225지수는 32,217.43을 기록, 1990년 7월 이후 처음으로 32,000선을 넘어섰다.

일본의 성공을 뒷받침하던 제조업 약화와 디지털 전략의 지연, 구조개혁 실패로 끊임없이 침몰로 내몰리던 일본의 이러한 드라마틱한 반전을 두고서는 여러 해석이 나온다. 사실 수년 전과 비교해 일본의 경쟁력이 급속히 강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많은 기업과 공공기관에서는 전자서명이 아닌 도장을 사용할 정도로 정보화 측면에서 후진적인 요소도 보이고, 급속한 고령화와 인구 감소와 같은 구조적 문제도 여전하다. 하지만 닛케이225의 급등은 분명 무언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 중심에는 안정적 공급망 대체국이라는 이슈가 자리한다.

글로벌 공급망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싸움은 현재 진행형이다. 양국 간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일본은 현명한 선택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더불어 전 세계 반도체 공급의 핵심국인 대만이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해 불안한 양상을 보이는 과정에서 일본은 이를 대체할 '안정적' 국가로 부상하고 있다. 대만의 TSMC는 일본 규슈에 새로운 라인을 건설하고, 일본 반도체 기업연합인 라피더스는 시스템반도체를 통해 반도체 부활을 꿈꾸고 있다. 삼성전자조차도 일본에 패키징 라인을 세운다. 미일 반도체 협정을 통해 몰락의 길을 걸었던 일본이 다시 반도체 선도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지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시작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투자 유치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은 일본의 종합상사 주식을 사들였다. 전 세계 광물자원 거래 시장에서 큰손 역할을 하는 일본의 종합상사에 워런 버핏과 같은 투자자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역시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현상 역시 일본이 안정적 대체국의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많다. 전 세계 광물자원 시장에서 헤게모니를 쥔 중국과 가장 많은 거래를 하는 곳이 일본 종합상사들이다. 직접적인 중국과의 거래 리스크를 피하면서도 안정적인 효과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버핏은 일본 종합상사를 통한 '핑퐁 투자'에 나선 셈이다. 결국은 이 역시 공급망 이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일본의 경제 정책적 변화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는 동시에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한일 경제수장이 이달 29일 일본 도쿄에서 만난다. 2016년 8월 유일호 당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이 만난 것을 마지막으로 7년 만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5월 초 인천 송도에서 스즈키 일본 재무상과 만나 양국 경제수장 간 회의를 복원하는 데 합의했고, 날짜까지 합의했다. 양국 정상회담을 계기로 그동안 닫혔던 양국 간 관계는 서서히 훈풍이 불고 있다. 양국 정상 간의 여러 포괄적 합의 사항 중 경제 분야에서 좀 더 디테일한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7년 만에 한일양국 경제 수장이 만나게 됐다는 것에만 의미를 부여하기에는 양국을 포함한 글로벌 경제 상황의 변화상이 너무 빠르고 많다. 한 번의 만남으로 많은 성과를 낼 수는 없겠지만, 한일간 켜켜이 쌓였던 여러 경제 현안을 두고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가야 한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문제를 두고 양국이 어떤 협력 채널을 만들고 실행할 것인지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이슈다. 거기에 더해 아시아 지역 경제 선도국으로서 역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선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가 오가길 기대한다. 2016년 8월 마지막 회의에서 논의됐던 양국간 통화스와프 체결 문제도 테이블 위에 다시 오르면 더 좋다. 양국 기업들이 보다 자유로운 교역을 위한 세제와 관세 문제 등도 중요한 과제다. 사실 한 번의 만남으로 모든 현안을 풀기에는 그동안 양국이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번 만남을 계기로 더 많은 대화와 성과를 찾길 바란다. 'Out of sight, out of mind'(안보면 멀어진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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