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글로벌 금융시장을 떨게 했던 미국과 유럽의 은행권 위기가 잦아들었다. 엄청난 공포 속에서 다음 파산은 어디일지 지목했던 때를 뒤로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시장은 평온을 되찾았다. 오히려 일련의 사태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을 멈추게 했다며 시장은 배드 뉴스를 굿 뉴스로 해석했다.

지난달 10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을 전후로 단 2주 만에 미국 3개 중형 은행이 파산했고, UBS의 크레디트스위스(CS) 인수는 신속 절차로 승인됐다.

보름간 벌어진 사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은행 시스템의 최대 위기였다. 금리 인상과 경제 저성장이 겹치면서 이번에도 금융시스템은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 16위 은행 SVB 파산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규모이고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큰 은행 파산 사례다. 벤처 자금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을 주요 고객으로 뒀던 SVB는 유동성 위기에 직면하자 보유한 국채. 모기지증권을 내다 팔았고, 더 나아가 대규모 신주 발행을 통한 자본조달 계획까지 발표했다.

불안해하는 고객의 신뢰를 높이겠다는 노력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역효과가 났다. '얼마나 어려우면 저럴까, 어쩌면 예금을 인출하지 못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하자 예금이 대거 빠져나가는 '뱅크런'이 발생했다.

더는 밀려드는 인출 요구를 들어줄 수 없게 됐고, 정부가 개입해 파산을 결정했다. SVB가 파산하기 이틀 전에는 시그니처뱅크의 통제권이 당국에 넘어갔고, 하루 전에는 실버게이트캐피탈이 청산을 선언했다. 해당 기업 주가는 연일 폭락했고, 다른 중형 지방은행들에도 불똥이 튀었다. 겁먹은 예금자들은 중소형 은행에서 돈을 빼내 상대적으로 안전한 대형은행으로 옮겼다.

SVB 파산 결정이 내려지던 날은 금요일이었다. 시장 충격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당국은 휴일을 앞둔 금요일에 파산을 결정했지만, 사안이 중대한 만큼 시장에서는 13일 블랙 먼데이를 예상했다.

불안불안하던 시장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CS의 연례보고서가 나왔다. 당초보다 한 주 더 미뤄져 14일 발표된 이 연례보고서에서 CS는 '중대한 약점(Material Weakness)'을 발견했고 고객 자금 유출을 막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다시 패닉이다.

CS는 자본과 은행 규모, 사업 모델 등에서 SVB와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글로벌 은행이다. 2021년 그린실 파산, 아케고스 마진콜 사태를 겪으며 부실이 드러났고 수익, 주가, 신뢰가 떨어지고 있었다고 해도 SVB 사태에 이은 원투펀치에 다시 글로벌 금융위기의 망령이 살아났다. CS 최대 주주인 사우디국립은행이 추가 지원 계획이 없다고 못 박자 사태는 통제 불가능해졌다. SVB와 CS에 이어 찰스슈왑에도 파산 경고음이 커지는 등 무차별적인 공포에 휩싸였다.


[그래픽] SVB 파산 여파 미국 기준금리 인상 전망
(서울=연합뉴스) 김영은 기자 =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여파로 이번 달 미국 기준금리 동결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금리(FFR) 선물 시장에서 이번 달 기준금리가 0.5%포인트 오를 것으로 보는 전망은 지난 8일에만 해도 78.6%에 이르렀지만, SVB 파산을 거쳐 13일 현재 0%로 아예 사라졌다. 0eun@yna.co.kr 트위터 @yonhap_graphics페이스북 tuney.kr/LeYN1




그런데 파장은 달랐다. 당장 글로벌 금융시장에 13일의 블랙 먼데이도 없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이 작용한 것도 있지만, 충격이라는 월가의 평가처럼 미국 재무부와 연준, 대형은행들이 이번 사태에서 금융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선보인 강력한 대응의 영향이 컸다.

무너진 3개 은행의 규모와 중요도가 미국 은행 시스템을 흔들 만큼 크지 않다던 미국 재무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빠르게 인지하고, 예금보장한도 완화, SVB와 시그니처은행 예금 전액 보장을 발표했다.

연준은 은행 유동성 지원을 위해 새로운 자금지원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은행들은 미국 국채와 모기지증권 등의 보유 자산을 액면가 담보로 1년간 자금을 대출할 수 있었다. 휴지 조각이 된 은행 자산의 가치, 자금시장 경색 속에서 떨어진 유동성을 높여 주기 위한 취지였다.

미국 대형은행들은 신뢰 회복을 위해 위기에 처한 은행에 돈을 예치해주는 등 위기 진화에 동참했다.

유럽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스위스중앙은행(SNB)은 CS에 유동성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고, 이도 모자라자 스위스 정부는 UBS가 30억 스위스프랑을 주고 CS를 떠안게 했다.

유례없는 대응 속에서 시장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지금은 손가락 하나면 인출할 수 있는 디지털뱅킹의 시대라는 점이다. 인터넷을 타고 위기를 둘러싼 루머는 엄청난 속도로 퍼진다. 두 가지가 더해지면 뱅크런은 누구에게나 바로 닥칠 수 있다.

실제 SVB의 경우 자금 위기가 부상한지 이틀도 안 돼 초고속으로 파산했다. 은행의 주 고객인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사업가들이 거래 은행의 위기 소식을 듣자마자 순식간에 스마트폰으로 예금을 대거 인출했다. 모두 미친 듯이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모습, 오늘날 목격한 실제 뱅크런이다.

비단 디지털 혁신 때문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더 복잡해졌다. 그런 세상 속에서 전이의 속도는 빨라졌고, 전이는 쉬워졌다. 시장 곳곳에 존재하는 불안한 불씨 하나에도 순식간에 시장은 혼탁해진다. 특히 공포의 전염 속도는 더 빠르다. 지난달 사태로 주식과 채권, 환율의 흐름이 바뀌지 않았지만, 요동치는 국채 가격이 시장의 유동성을 움직인 게 그 예다. 채권 매니저들은 겪어 보지 못한 변동성에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투자 주체들은 자산 매각보다는 시장에 충격이 작은 미세조정 정도로 대응했다. 기존 시스템에는 잡히지 않는 투심에 민감한 숱한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MMF 등 그림자 금융까지 움직였더라면 어땠을까. 쉬운 전이는 그래서 더 무섭다. (투자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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