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던 4월 24일. 국내증시 개장을 기다리던 투자자들의 눈에 장 시작과 동시에 상상도 못 한 광경이 펼쳐졌다. 이름도 생소한 프랑스계 소시에테제네랄(SG)증권 창구로 매물 폭탄이 터지면서 8개 종목이 일제히 하한가를 맞았다.

'동전주', '잡주'도 아닌, 어엿한 중견기업, 가치주들이 특정 창구 매물로 인해 한꺼번에 가격제한폭까지 떨어지는 일은 흔치 않다. 대기업인 CJ도 장중 28% 급락하는 등 폭락세를 보였다.

반대매매가 의심됐지만 2~3년 동안 주가가 우상향한 종목들이라 뭔가 맞지 않는다. SG증권 자체 프로그램 오류, 트레이더의 주문 입력 실수(팻 핑거)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그러기엔 하한가 매도 잔량이 너무 많다. 오류나 실수라면 바로 주문을 취소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실적이 좋지 않은 SG증권의 때아닌 철수설마저 흘러나왔다.

결국 시장의 결론은 차익결제거래(CFD)에 모아졌다. CFD는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고 기초자산에 최대 2.5배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하는 파생상품이다. 매수·매도 차액만 결제하고, 40%의 증거금만 유지하면 된다. 주가가 오를 때는 대박이지만, 주가가 내릴 때는 시한폭탄이 된다.

CFD 거래에서 주가가 내려가고 증거금이 부족해지면 주식을 내다 팔 수밖에 없다. 같은 종목에 투자한 주가 조작 세력들의 증거금이 흔들리니 동시다발적으로 반대매매가 나왔고, 도미노처럼 엄청난 매도 압박이 번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개미 투자자들은 '하따(하한가 따라잡기)'에 나서기도 했지만, 하한가 매도 물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하한가 8개 종목 중 2개 종목은 나흘 연속 하한가, 4분의 1토막이 났다. 증권사에서 독촉하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손실 정산금 계좌 인증도 온라인을 타고 급속히 확산했다.

무더기 하한가 사태 발생 2주, CFD를 동원한 주가조작 세력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사회 문제로 비화했고,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서울 남부지검은 주가 조작 의심 세력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본격적인 공조 수사에 들어갔다.

김익래 다우키움그룹 회장은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섰다. 그는 거래일 기준으로 폭락 이틀 전 시간외매매로 다우데이타 주식을 팔아치워 605억원을 확보했다. 기막힌 타이밍이었기에 마치 사전에 작전세력의 실체나 시세조종이 이뤄지고 있던 사실도, 작전세력의 매도를 미리 알고 있었다는 의심도 불거졌다.

특히 이번 폭락에 원인으로 추정되는 투자자문사 대표가 이익을 본 사람이 주범이라며 사실상 김 회장을 지목해 사태는 진실 공방의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는 키움증권 CFD 계좌의 반대 매매가 이번 주가 폭락 사태를 촉발했다고 주장하고 김 회장이 다우데이타 보유 주식을 폭락 직전 팔아치우면서 증여세 절세 효과까지 거뒀다고 항변했다.

김 회장은 다우기술을 성공시킨 벤처 1세대로, 이 벤처 DNA를 증권업에 장착시킨 인물이다. 2000년 키움닷컴증권(현 키움증권)이 돛을 올릴 때만 해도 "그게 되겠어?"라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란 듯이 이겨내고 대형 증권사로 키워냈다.

옛 금감위 구조개혁기획단 심의관실 팀장을 초대 사장으로 키움닷컴증권이 출범했던 2000년 1월은 주식 투자를 하려면 지점 상담은 필수처럼 여겨지던 때다.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막 태동하던 시기지만, 영업점 하나 없이 닷컴(.com), 온라인 중심으로만 운영하겠다던 사이버증권사 키움닷컴증권의 계획은 무모한 도전처럼 보였다.

이후 키움닷컴증권은 영업점 운영이라는 고정 비용이 없는 대신 파격적인 저가 수수료 전략을 내세웠다. 설립 1년까지만 해도 '반응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고전했지만, 지점 투자에 실망한 투자자들이 10분의 1 수수료로 주식 거래를 할 수 있다는 키움증권으로 옮겨가면서 가파르게 시장점유율을 높여갔다.

HTS의 대명사였던 대신증권의 '사이보스'에서 키움증권 '영웅문'으로의 이동은 업계 물줄기가 바뀐 지점으로 평가된다.

이후 키움증권은 창사 23년 동안 거의 한 번도 뒷걸음치지 않을 정도로 꾸준히 성장해왔다. 자기자본 4조원을 달성해 초대형 투자은행(IB), 발행어음 사업까지 눈앞에 뒀다.

거침없이 달려가던 키움증권은 지금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금융회사에 평판 리스크는 치명적이다.


금감원 CFD 전격 검사, 증권가 긴장
(서울=연합뉴스) 류영석 기자 = 최근 SG증권발 폭락 사태로 드러난 주가조작 의혹과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키움증권에 대한 차액결제거래(CFD) 검사에 착수한 가운데 3일 오후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키움증권 본사의 모습. 2023.5.3 ondol@yna.co.kr



김익래 회장이 화제의 중심에 서면서 권성문 전 KTB투자증권 회장과의 연결고리도 새삼 재조명되고 있다. 이들은 IT, 벤처 투자 붐을 타고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를 축적했고, 증권업까지 진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숨겨진 이야기 하나. 국내 최초의 온라인 증권사는 김익래 회장의 키움증권이 가져갔지만, 이 온라인 증권사라는 아이디어는 권 전 회장이 만들어냈다.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권 전 회장은 증권사 설립의 꿈을 안고 금융당국에 증권업 인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냉각 캔 사건 등으로 검찰에 고발됐던 권 전 회장의 전력이 문제가 돼 가로막혔다. 증권사 설립을 위해 준비했던 자료 등을 권 전 회장이 김익래 회장에게 넘겼다는 게 증권업계의 '설(說)'이다.

권 전 회장의 증권업 꿈은 한 참 뒤 이뤄진다. 자본시장통합법 도입에 맞춰 당국이 증권업 시장 진입 요건을 완화해 8개 증권사에 신규 인가를 내줬던 2008년 권 전 회장은 KTB투자증권을 세운다.

키움증권과 달리 KTB투자증권은 오래가지 못했다. 국내 첫 민간 부동산신탁회사인 다올부동산신탁을 만든 이병철 회장의 손으로 넘어갔고, 지난해 다올투자증권으로 사명까지 바뀌면서 권성문의 KTB투자증권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공교롭게도 다올투자증권은 다우데이타와 함께 8개 하한가 종목에 포함됐다.

부동산 PF 사태로 홍역을 치른 뒤 자산 일부를 파는 혹독한 구조조정 끝에 올해 정상화의 길을 걷고 있던 다올투자증권은 하한가 사태에 오르내리고 있다. 상환전환우선주(RCPS)가 보통주로 전환되면 배당 부담을 줄일 수 있는데 주가 급락에 전환 가능성이 작아져 자본 부담을 덜 기회도 잃게 됐다.

급한 불을 끄고 올해 잰걸음으로 잔불 정리에 나선 다올투자증권에 최근의 시장은 참 야속할 것 같다. 그래도 시간은 흐른다. 그 사이 김익래 회장은 모든 직 사퇴, 주식 매각 자금 사회 환원 등을 발표했다. (투자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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