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한국 사회의 아젠다 중 대학입시를 포함시켜야겠다면 도저히 막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학력으로 경제적 계급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이 신(scene)의 사탕발림'에 '초등 의대 입시반'도 성행 중이다. '순수를 목 졸라 죽인 지탄의 영순위'라고 비난한다면, 받아들이겠다.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학생의 인생을 설계하는 일, 이 중차대한 것에도 유행이라는 게 있다. 법과 경제는 늘 많은 부모의 관심 분야였다. 섬유 산업의 발달로 화학공학이 인기를 끌던 시기도 있었다. 기초 과학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해 나가겠다는 국가적 의지에 물리학과가 관심을 받은 적도 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드라마 열풍으로 신문방송학과가 이목을 끈 적도 있다.

요즘은 이과의 시대다. '의대생 배출 1위는 서울대'라는 '의대 쏠림 현상'이 씁쓸할 수도 있겠지만, 넓게 보면 인문학의 몰락과 함께 컴퓨터공학, 수학 등이 많은 학생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인공지능(AI)의 시대, 첨단 기술이 보편화된 미래, 인간의 경쟁력은 인성일 것이라는 수많은 미래학자의 주장은 경제적으로 보자면 좀 더 먼 미래의 얘기다.

"약 3~4년 전부터 최상위 학생들이 서울대 의예과가 아닌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선택하고 있다. 우리 때 물리학과에 서울대학교 전체 수석이 입학하던 때가 떠오른다. 물론 대다수 우수한 학생의 의대 선호는 여전하다. 그래도 이런 변화는 꽤 의미가 있다"
요즘 여의도에서 가장 '핫'한 자산운용사의 대표가 이런 얘기를 했다. 사람이 거의 전부인 금융업인 만큼, 똑똑한 직원을 뽑기 위한 것인가 했다. 그게 아니라 이런 입시 트렌드에서 투자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했다. 이들의 선택이 곧 미래의 투자 테마가 될 수 있어서다.

투자를 통해 이익을 거두기 위해서는 동시대 사람들의 욕망을 알아봐야 한다. 지금의 신(scene)의 주인공은 이과다.

'K-입시' 시작은 초등부터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20일 종로아카데미 주최로 서울 세종대학교에서 열린'전국 초중 학부모 대상 대입 및 고입 입시설명회'에 한 어린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들어가고 있다. 2023.5.20 hama@yna.co.kr



과거 고도 성장기에 건설주, 은행주, 증권주는 트로이카로 불리며 증시를 주도했다. 건축공학과는 공대 인기 순위 1위였고, 은행원, 증권맨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후 찾아온 경기 침체 다음 경기 회복기에는 원자재, 시멘트, 철강, 석유, 화학주가 주목받았다. 차화정(자동차, 화학, 정유)이라는 신조어를 만들 만큼 이들 종목이 뜨거워지기 전 현대차, SK이노베이션은 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회사였다. 공대의 인기가 높았다.

유커의 등장과 함께 소비재, 옷, 유통, 여행 카지노, 리조트주가 떠오르기도 했다. 호텔경영학과가 문과 상위권에 위치했다. 코로나19 전후로 네카오(네이버, 카카오) 주가가 수직 상승했는데, 그 전 우수 인재들이 대기업이 아닌 이들 회사를 찾았다. 서울대, 카이스트 출신들의 창업 신화가 입시생들의 꿈으로 자리잡았다.

올해 들어서는 LG에너지솔루션, 에코프로비엠 등 2차 전지 관련주가 날더니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코스피를 연중 최고치까지 올려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우선주까지 더하면 코스피 시가총액의 23%를 차지하는 국가대표주다. 두 종목을 끌어올린 힘은 반도체 재고 감소보다는 AI에 있다.

엔비디아가 AI 광풍을 타고 반도체기업 중 사상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달러 클럽에 가입했는데 그 훈풍을 받았다. 엔비디아는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를 구동하기 위한 필수품으로 꼽히는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전 세계 시장에서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기세를 타고 AI 슈퍼컴퓨팅 서비스인 DGX 클라우드를 비롯해 다양한 AI 관련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챗GPT로 촉발된 AI 붐이 최근 몇 년간 서울대 컴공과로 인재들을 끌어모았다고 볼 수 있다.

증권사는 물론 보수적인 은행마저도 통계, 공학 등을 전공한 이과생을 뽑는다. 투자의 선봉에 선 증권사로서는 이과는 세상을 읽는 코드다.

세상이 이과 세상이고, 투자도 이과 세상이다. (투자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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