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부가 이권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달 초 신임 차관들에게 "우리 정부는 반(反) 카르텔 정부"라며 "이권 카르텔과 가차 없이 싸워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민주사회를 외부에서 무너뜨리는 것은 전체주의와 사회주의이고,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것은 부패한 카르텔"이라고 강조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곧바로 "사회 전반에 걸쳐 이권 카르텔이 문제가 되는 만큼 복무 자세를 더욱 가다듬어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감독·검사업무를 수행해야 한다"면서 "금감원 출신 금융사 임직원들과의 사적 접촉 및 금융회사 취업에서도 국민의 시각에서 한 치의 오해도 없도록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오랜 시간 이권 카르텔은 사방에 존재했다. 금융권도 예외는 아니었다.

단군 이래 첫 검사 출신으로 부임한 금감원장이 금융산업 내 이권 카르텔을 공개적으로 언급하자 은행, 보험, 증권, 카드 업계 모두가 긴장하며 주목했다. 특히 최근 IFRS17로 시끄러운 보험업계는 이 말 한마디에 더 예민했다.

현재 보험업권의 현안은 단연 금융감독원의 'IFRS17 가이드라인'이다. 국제회계기준에서 당국식 계산법을 적용하라는 지침이다.

올해부터 적용된 IFRS17은 보험부채를 계약 시점 원가가 아니라 매 결산기 시장금리 등을 반영한 시가로 평가하는 것이 핵심인 새로운 국제회계기준이다. 원가가 아닌 시가 평가에 곡소리가 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분기 보험사, 특히 손해보험사들은 어닝 서프라이즈를 냈다.

역대급 실적에 실적 부풀리기 의혹은 불거졌고, 금감원은 보험사들의 자의적인 가정을 막기 위해 신뢰성을 확보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보험사에 내려보냈다. 영업상 호흡이 긴 보험사들에 계리적 가정이 중요한데, 그 기초가정을 다시 하라는 의미다.

그 중심에는 계약서비스마진(CSM)이 있다. CSM은 고객과의 보험 계약에 아직 실현하지 않은 미래 미실현이익의 총량으로, 보험사가 보유한 계약의 가치를 보여주는 숫자다. CSM은 일단 부채로 계산한 뒤 매년 상각액을 보험영업이익으로 인식한다. 당장 가이드라인에 따라 CSM 상각액을 달리하면 보험사의 손익은 엄청나게 달라진다.

 

금융감독원 2023년 반부패·청렴 워크숍 열려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2023년 반부패·청렴 워크숍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3.7.4 ryousanta@yna.co.kr

 


금감원이 제시한 새 가이드라인의 회계 적용을 두고 보험사들은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었다.

고무줄 CSM을 바로 잡고, 사태를 진정시키겠다던 가이드라인은 오히려 혼란을 가중했다. 지금부터 할지, 과거 것도 할지, 가이드라인 적용의 회계처리를 두고 전진법과 소급법이 화두로 떠올랐다.

제도 변화여야 소급을 적용하는데, 이번 가이드라인은 추정치 조정이니 전진법이라는 게 당국의 입장이다. 회계기준원에서도 회계 추정치의 변경은 전진법 소급이 원칙인 만큼 전진법을 이야기하는 금감원의 입장은 이해한다.

하지만 금감원이 새롭게 만든 가이드라인을 정책의 변경으로 봐달라고 하는 보험사들에도 논리는 있다. 가이드라인은 어디까지나 보험사에 계리적 가정의 기준을 제시할 뿐이라지만, 피검기관인 금융회사에 금감원의 권고는 사실상의 지시고, 제도적 변화다.

6년 전 책임준비금 적정성 평가제도(Liability Adequacy Test·LAT) 개정안이 만들어질 당시에 제기됐던 회계처리 논란도 재부상했다. IFRS17 시행으로 인한 보험 부채의 시가평가에 대비해 미리 부채를 적립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이 개정안 때, 금감원은 소급법 적용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LAT 할인율 등 감독 규정에 따르는 변경을 추정의 변경으로 보기 어렵고, 개별 회사가 아닌 보험업계 전체가 적용해야 하는 회계정책의 변화라는 이유에서였다.

"LAT나 가이드라인 모두 금감원이 모든 보험사 재무제표에 반영할 것을 권한 사실상의 정책 변경이다. LAT 할인율은 정책이고 가이드라인은 추정의 변경이라면 이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꼬집은 한 보험사 계리담당 임원의 말을 흘려들을 필요는 없다.

특히나 그 원칙이 특정 보험사에만 유리한 것으로 비쳐진다면 나머지 보험사들은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과 보험업권 내 이권 카르텔이 언급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이드라인의 반사이익 수혜가 한 곳에 '몰빵' 되는 것을 두고, 업계일각에서 금감원을 '이중대'라 칭하는 말이 나올 정도로 뒷말이 무성해진다.

그렇다면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은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것일까. 가이드라인은 행정지도 성격이 강하다. 금융당국이 그림자 규제를 없애겠다며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는 금융회사를 제재할 근거를 삭제한 지도 오래다.

새롭게 만든 가이드라인 탓에 어떤 곳은 조(兆) 단위 CSM이 빠진다고 한다. 당사자는 생존을 고민할법한 이야기다.

10년을 준비했지만, IFRS17은 모두에게 처음이다. 처음은 누구나 서툴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새 변화를 준비하는 모두에게 시간은 필요하다. 그 시간이 누군가의 특혜로 비쳐질 소지는 없는지 세심하게 살펴보는 것도 금융당국의 몫이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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