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금융당국의 증권시장 공매도 전면 금지를 보노라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떠오른다. 영화에서 밀러 대위와 그의 대원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3형제가 전사하고 적진에서 실종된 생존자인 막내 라이언 일병을 구출하라는 미국 행정부의 특별한 작전을 수행한다. 하지만 부대원들은 작전의 성패에 앞서 라이언 일병 한명을 구하기 위해 여덟명이나 되는 대원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는 게 바람직한지를 놓고 혼란에 빠진다.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는 지난해 정부가 '빚투(빚내서 투자)'로 손실을 본 청년층의 채무를 조정해주겠다고 발표했다가 부채탕감 논란을 빚었던 채무조정프로그램과 닮았다. 빚투와 묻지마 투자로 개미지옥에 빠진 개인투자자들도 어루만진다는 정책적 제스처로 이해되지만, 정책의 일관성 등 금융시장의 원칙들이 훼손될 수도 있다. 아울러 주가 하락의 근본적인 이유를 공매도에서 찾으려는 개인투자자들의 주장을 수용했다는 금융당국의 설명이 잘못된 시그널로 읽혀 묻지마 투자를 자극하고 또 다른 빚투를 부추기진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시중은행 가계대출 및 주택담보대출 월간 증감액
※자료 출처 : 한국은행 월간 금융시장동향

 


이미 금융당국은 집값과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일관성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연초 집값이 조정을 받는 과정에서 '영끌(영혼을 끌어모은 대출)'로 대표되는 가계대출도 조정받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당국이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던짐으로써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실제로 집값이 하락하자 금융당국은 영끌족을 구한다는 미명하에 정책자금인 특례보금자리론을 저리로 수십조원이나 공급하고 각종 부동산 대출 규제도 풀었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시그널로 이어져 청년층의 영끌을 자극하고 다시 가계부채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으로부터 우리나라 가계부채의 심각성에 대한 경고음이 나온 뒤에야 '가계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외환위기의 몇십배 위력이 될 것'이란 우려가 정부에서 나왔다. 지금처럼 고금리에 경제마저 어려운 시기에 당국이 나서서 대출 규제를 풀고 정책성 대출상품을 내놓더니, 이번에는 가계부채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시중은행에 가계대출을 억제하라는 엇갈린 신호를 보내고 있다.

증권시장 공매도 금지는 부동산 영끌족 구하기와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이차전지·인공지능(AI) 등 테마주 위주로 빚투를 지속하다가 개미지옥에 빠져서 벗어나지 못하는 개인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공매도의 순기능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이유로 당국도 개인투자자들의 불만을 알면서도 공매도 제도를 유지했다.

무엇보다 영끌이나 빚투를 위한 정책을 반복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투자로 벌어들인 이익이 오롯이 투자자의 개인 주머니에 들어가는 것처럼 투자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은 투자자가 스스로 책임지는 게 투자의 원칙이다. 오히려 손실을 본 투자자들을 위한 선심성 정책은 당국이 나서서 투기를 조장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코스피지수 및 신용융자잔고

 


기왕 시작한 만큼 당국은 공매도 관련 후속 조치를 조기에 마련해 공매도 금지 기간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 이번 조치로 신용융자잔고와 미수금 등 빚투가 다시 늘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모니터링하고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 공매도 금지가 길어질수록 한국 금융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자의 신뢰와 대외적인 신인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미 공매도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인식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공매도를 금지한 국가는 한국과 외환위기 수준의 튀르키예 정도에 그친다.

이번 조치에 대해 벌써 JP모건 등 해외투자기관은 사전통지나 공개 협의, 유예기간이 없는 규제 결정이며, 국제적으로 한국 금융시장 제도의 신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식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아무쪼록 개인투자자들의 마음을 얻으려다 더 많은 중요한 것들을 잃지 않을까 걱정이다. (취재보도본부장)

eco@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1시 26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