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인플레이션은 과거 핵전쟁을 제외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위험 요소이며, 로마제국을 붕괴시킨 궁극적인 원인이기도 하다. 인플레이션이 심하면 문명이 망가질 수도 있다"

워런 버핏의 단짝이자 사업동반자였던 고(故) 찰리 멍거가 지난 2022년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데일리 저널 주주총회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면서 했던 발언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수준이 당시보다는 낮아졌지만,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중요한 변수임은 틀림없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대제국 로마가 인플레이션 때문에 허망하게 무너진 것처럼, 인플레이션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와 정권을 무너뜨린 적이 많다. 가까운 예로 문재인 정부도 주택 부문의 인플레이션, 즉 부동산값 폭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는 게 사실이다.


*사진 설명:서초구 하나로마트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

 


그래서일까. 총선을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이 물가와 전쟁을 선포하며 고물가 잡기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지난 19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지난달 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기 대비 3.1%를 기록하면서 우리 정부가 2%대 수준으로 물가 관리를 하려던 선을 조금 넘었다"며 "전 부처가 경각심을 갖고 물가 2%대 조기 안착을 통해 민생이 안정될 수 있도록 총력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윤 대통령은 앞선 18일에도 민생경제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는 장바구니 물가를 내릴 수 있도록 농산물을 중심으로 특단의 조치를 즉각 실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경제수장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물가 상황이 엄중하고 체감경기 회복이 더디다"며 "물가는 민생의 핵심이고 물가가 높을 경우 국민들 입장에서 다른 민생정책 체감도 어렵게 한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정부가 물가를 우려하는 이유는 최근 소비자물가, 특히 서민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물가가 그만큼 불안하기 때문이다. 2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에 비해 3.1% 상승했다. 특히 사과와 배 등 신선과일의 가격 상승률은 41.2%였다. 이는 32년 5개월 만에 최대다. 농산물가격 상승을 의미하는 '애그플레이션'이나, 과일값을 대표하는 사과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현상을 뜻하는 '애플레이션' 현상도 일상화됐다.

대통령과 경제수장이 물가와 전쟁을 선포하고 전면전을 펼치는 것과 달리 사실상 물가와의 전쟁에서 최선봉에 서야 하는 통화당국인 한국은행의 긴장감은 예전만 못한 게 사실이다. 물론 한국은행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다른 선진국 중앙은행에 비해 한발 앞서 기준금리를 올렸다. 최근 고물가 현상이 통화정책과 직접 관련된 근원물가가 아니라 장바구니 물가에서 집중된다는 점에서 한국은행이 정책으로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도 맞다.


*사진 설명:한국은행 신축 통합별관에 걸린 물가안정 현판

 


그러나 물가 안정은 국민들이 한국은행에 부여한 가장 중요한 책무다. 이는 물가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라도 한국은행이 가장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이 과거 본관에서 사용하던 현판인 '물가안정'을 새로 지은 청사 로비에 옮겨온 것도 이런 이유다. 한국은행이 주요국 중앙은행보다 먼저 금리를 인상한 것만으로 역할을 다했다고 위안으로 삼기에는 작금의 고물가가 심상치 않다.

사실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 같은 정책은 없다. 통화당국이 대다수 국민과 기업의 고통을 무릅쓰면서도 고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금리를 인상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정부가 고금리 부작용을 유독 강조하다가, 갑자기 고물가와 가계부채를 잡겠다고 손발 벗고 나서는 모양새도 썩 좋지만은 않아 보인다.

최근 인플레이션을 두고 국내외 공급망 문제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진단이 없지 않지만, 수요 측면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점점 거세지는 상황에서 과거에 익숙했던 저물가 체제는 사실상 막을 내렸다는 평가가 대세다. 아무쪼록 정부가 밝힌 재정정책과 공급정책을 통한 고물가 대응뿐 아니라 실질소득을 갉아먹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통화당국의 지속적인 역할도 필요해 보인다. (취재보도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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