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 트러스톤자산운용이 보여준 상징성은 크다.

대기업, 금융지주 계열사도 아닌 독립계 자산운용사로, 그룹과 계열사의 지원 없이도 한 때 펀드 시장에서 독주를 했다. '칭기스칸'과 '다이나믹롱숏' 펀드는 펀드 시장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자산운용사 가운데 독립계 자산운용사는 10개 남짓이다.

글로벌 3대 국부펀드 모두 트러스톤을 선택했다.

세계 1위인 노르웨이 글로벌정부연금펀드(GPEG)는 트러스톤에 자금을 맡겼다가 실력을 믿고 추가로 자금을 위탁했다. 세계 2위 국부펀드인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투자공사(ADIA)와 거대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에서도 트러스톤을 위탁운용사로 선정했다.

국민연금 위탁운용사 중 유일하게 3년 반 동안 최우수 등급에 선정되기도 했다.

'주식의 신' 황성택 사장이 이끈 트러스톤이 보여준 기록이다.

황 사장은 현대종합금융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1995~1996년 벤처투자를 시작해 최대 150배까지 수익을 남긴 적이 있을 정도로 투자 감각이 뛰어났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4월, 모두가 쓰러져갈 때 역발상으로 지인들과 함께 초기 자본금 10억원으로 IMM투자자문을 설립했다. 10년간 투자자문업계에 맏형격으로 있다 2008년 자산운용업 허가를 받고 트러스톤자산운용으로 재탄생했다.

평범한 직장인이 자문업에 뛰어든 뒤 자산운용사로 키워낸 샐러리맨 신화다. 시기나 성장 과정이 비슷해 박현주 회장이 이끄는 미래에셋과 곧잘 비교되기도 했다.

트러스톤은 주식 외길을 걸었다. 자산운용사에게는 '갑 오브 갑'인 국민연금에 쓴 소리를 하고, 상장사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가장 많이 던진 '금융사 시어머니' 역할을 했다.

그런데 트러스톤이 달라졌다. 주식 외에 채권, 대체투자(AI)로 영역을 확대했다.

재작년에는 '23년 채권맨'을 영입해 채권운용을 시작했다. 국민연금에서 채권팀장과 채권운용실장을 역임했던 채권계 거물을 황성택 사장이 직접 데려왔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 ING자산운용, 대우증권에서 활약한 전문 운용역을 중심으로 채권 본부도 꾸렸다.

시장은 의아했다. "트러스톤도 채권을 하는 구나…"

최근에는 AI 팀을 꾸렸다.

대체투자 일인자로, 국민연금 운용전략실장을 지냈던 이윤표 전 실장을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황성택 사장과 같은 직급을 내주며 이 전 실장을 회사에 합류시켰다.

황 사장은 주식을 제외한 채권과 AI 전 부분의 최고투자 결정 권한을 이 전 실장에게 줄 정도로 파격적인 대우를 해줬다.

채권이나 AI를 강화하는 흐름에서 트러스톤도 비켜갈 수 없었던 셈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트러스톤운용의 사업 확장은 주식만으로는 더는 운용업계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며 "대체투자를 하려는 운용사는 많아지는 가운데 국내 딜이나 인력은 부족해 아예 해외 운용사와 손을 잡으려는 곳들도 늘어나는 추세다"고 평가했다.

최근 금융투자, 자산운용업계에서 주식시장은 '노숙자'로 비유되곤 한다. 경쟁자도 너무 많고, 정보도 너무 많이 공개되다보니, "먹을 게 없다"는 씁쓸함에서 나온 단어다.

주식이 전부인 줄 알았던 여의도 수많은 노숙자들이 새롭게 선택하는 길, 그 길의 끝엔 뭐가 있을까. 가보지 않은 길에 도전하는 노숙자들을 오늘도 응원해본다. (금융증권팀 차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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