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부의 관리하에 운영되던 대규모 공기업을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민영화 계획에 따라 국민 각계각층에 해당 주식을 골고루 분산해 대다수의 국민을 주주로 하는 주식, 국민주((國民株).
한국 증시에서 국민주 시대는 88서울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있던 1988년초로 거슬러 올라간다.1988년 2월, 당시 정부는 월급 60만원 이하 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주 보급을 위한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정부가 관리하는 공기업의 정부 소유 주식을 농·어민 등 저소득계층에 우선 배분해 정부투자기관의 경영과실을 골고루 나눠주고 투자자를 늘려간다는 취지에서 마련된국민주 아이디어가 구체화된 것이다. 이 발표는 국민들의 품으로 국민주가 곧 들어오게 된다는 뜻이었다.

우리사주조합원, 중하위소득계층국민, 기존의 공모주청약 관련 저축가입자가 국민주를 받을 수 있었다. 우리사주조합원 중에서 해당 공기업에 3개월 이상 계속 근무한 일용직근로자까지 포함하면서도 임원을 제외한 것이 눈에 띈다.

정부는 국민주신탁제도도 만들었다. 금융기관에서 국민주를 신탁받아 대신 운용해주는 제도로, 국민주를 사는 만큼의 돈을 추가로 납부하면 신탁받은 금융기관이 50%는 국민주를 사고, 50%는 채권 등을 사서 수익을 늘려간다. 투자 수익성과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상품이다.

국민주 직접 매입과 비교할 때 자금이 두 배로 많이 필요하지만, 소요자금의 50%까지는 취급금융기관에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 8%의 저리로 융자해줬다. 단주도 국민주신탁가입자에 추가 배정하는 등 여러 혜택을 줬다.

당시 정부는 상반기 중에 포항종합제철 주식을 보급하고, 하반기에 국민은행과 한국전력 주식을, 1989년 이후부터 통신공사 등 기타 공기업은 단계적으로 국민주로 매각한다고 밝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1호 국민주가 탄생한다. 바로 1988년 6월10일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포항제철 주식이다. 자본금 4천589억원의 초대형 철강주로, 그야말로 우리 증시의 장래를 가늠하게 될 주식으로 지목됐다. 발행가 1만5천원인 포항제철 주식이 상장 후에는 2만5천~3만원 선은 될 것이라는 주장이 증권업계에서는 지배적이었다. 동종업종인 강원산업, 동부제강, 인천제철, 삼미특수강, 한국강관 등 대형철강주나 럭키, 유공, 금성사, 대우전자 등 대형주 주가와 비교하면 3만5천원에서 4만원도 가능하다고 봤다.

국민주 포항제철은 주식 인구를 대폭 늘렸다. 자산가나 주식에 일찍 눈을 뜬 일부만이 하던 주식 투자가 국민 재테크로 거듭났다. 증권사 객장에는 국민주와 비슷한 공모주를 비롯해 대형주 투자를 위한 투자자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신문의 주식시세면 열독률도 이즈음 대폭 늘어났다. 이후 증권시장에서는 "객장에 아기 업은 엄마가 나오고, 레스포삭 가방을 든 아줌마 부대가 등장하면 어김없이 주가는 꼭지다"는 휴먼 인덱스도 만들어진다. 지금도 너도나도 주식에 뛰어드는 건 과열, 주가 꼭지의 신호로 쓰인다.

높은 관심에 부응하듯, 상장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포항제철은 국내 상장회사 중 시가총액 규모가 가장 큰, 3조원에 가까운 기업가치를 지닌 회사로 우뚝 섰다. 그러나 국민주 배정자의 반수 이상이 상장 6개월 이내에 포항제철 주식을 매각했다. 국민주 보급의 취지가 빛바랬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주식에 대한 관심을 바꾼 건 확실하다.

이듬해인 1989년 한국전력공사도 연이어 청약을 거쳐 국민주로 증시에 상장했다. 포항제철을 받지 못한 국민들이 대거 몰렸다.

기억 속에 잊혔던 국민주를 다시 끄집어낸 건 35년 전 국영기업에서 국민주로 탈바꿈한 지금의 POSCO홀딩스(옛 포항제철)다. 상장 당시 포항종합제철에서 2002년 4월 22일 POSCO(포스코)로, 작년 3월 17일 POSCO홀딩스(포스코홀딩스)로 종목명은 여러번 변경됐다. 철강에서 2차전지로 체질을 개선한 POSCO홀딩스는 올해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면서 주식 투자자들에 손꼽히는 인기 종목으로 떠올랐다.

상장 이후 꾸준히 우상향하던 포스코홀딩스의 주가는 2001년 1월 2일 7만6천500원, 2007년 10월 2일에는 공모가의 51배에 이르는 76만5천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쓴다.

고성장기를 지나 저성장기에 접어들면서 중후장대(철강, 화학, 자동차, 조선주 등의 제조업)는 정체기에 들어섰고, POSCO홀딩스 주가는 침체 속에서 빠진다. 그 자리는 SK하이닉스 등 새로운 종목이 자리 잡았다. 15년 이상을 헤매던 POSCO홀딩스는 올해 2차전지 테마와 함께 역대 최고치에 육박했다. 최초의 국민주 포항제철이 35년 만에 최고의 국민주로 진화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이번에는 현실이 될 것 같다.


POSCO홀딩스 상장 후 주가 흐름


툭 하면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 요즘, 지금의 국민주는 그때를 풍미한, 모두가 열광했던 주식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네이버, 카카오를 일컫는 '네카오'나 최근 시장을 주도했던 에코프로도 국민주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주는 주식 시장의 트렌드를 읽는 이정표다. 그 시절 국민주가 무엇인가를 보면 우리나라의 산업이, 국가 경제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해왔는지 한눈에 보인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국민주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국민주의 왕좌는 돌고 돌지만, 긴 시간 돌고 돌아 다시 돌이켜보면 그 시절 국민주를 여태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승자다. 시장의 부침에도 그렇게 '존버'는 승리했다. 오랜만에 시장을 움직이는 왕년의 국민주가 반가운 것은 그 때문이다. 찰나의 단위로 바뀌는 세상, 존버가 가져다주는 달콤함도 있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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