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회사채 증액 결정부터 철회까지 5일이 걸렸다. 영업일 기준으로는 단 사흘이다. 빠르다면 빨랐고, 느리다면 느렸다. 2월 마지막 주 GS건설과 주관사 NH투자증권은 숨 가빴다.

발행사의 번복 논란을 두고 또 다른 흥국생명 사태로 불릴법한 'GS건설 회사채 수요예측 무력화 사태'의 전말은 이렇다.

지난달 22일 GS건설은 1천500억원의 회사채 모집 공고를 냈다. 건설사 중 우량채인 GS건설이 내놓은 2년물이었다. GS건설은 최대 3천억원까지 증액 가능성을 열어뒀다. 희망 금리 밴드는 최대 민평 +170bp.
발행 전 GS건설은 'A'급 건설사 회사채 성패의 가늠자로 여겨질 수 있어서 시장의 보는 눈이 많았다. 앞서 현대건설(AA-), SK에코플랜트(A-)가 회사채 발행에 성공하긴 했지만, 현대건설은 'AA'급, SK에코플랜트는 아파트 사업보다는 플랜트 산업 중심이라는 점에서 시장의 우려를 다소 비껴가서다.

하지만 수요예측 결과 최대 증액 금액은 달성하지 못했다. 사실상 흥행 실패였다. 'GS건설도 아직 회사채 시장에서는 안 되는 구나'를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시점도 좋지 않았다. GS건설이 수요예측을 한 당일, 간밤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한국 국고채 금리도 출렁였다. 시장 불안이 커지면서 수요예측 분위기가 위축됐다.

다음날 GS건설은 정정 신고서를 통해 2천500억 원으로 증액 발행을 공표했다. 3천억원까지 열어놨으니 규모상 문제는 없다.

문제는 스프레드 +140bp, '1차 쇼크'다. 당초 GS건설이 내건 모집액인 1천500억원까지 허용된 가산금리는 +140bp였다. 최대 금리 밴드 안에 들어왔으니 더 넘친 수요 2천190억원을 잡으려면 +170bp까지 커졌어야 했다.

GS건설은 2천500억원까지 증액 발행하는 과정에서 +140bp보다 높은 금리에 수요예측에 베팅한 투자자들을 무시하고 +140bp 금리에 다시 추가 청약을 진행했다. 수요자들의 요청에 응답했을 뿐이라는 게 NH투자증권의 설명이다.

다음날 분위기 반전되자, 기관들은 GS건설에 +140bp면 괜찮은 금리라고 여겼을 수 있다. NH투자증권은 수요예측 결과를 통해 유연하게 가격을 결정했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시장의 여론은 '짬짬이'로 추가 청약을 했다며 들끓었다. 숱한 변명의 대명사인 '관행'대로라면 2천500억원까지 증액하기 위해서는 수요예측을 기반으로 +170bp 수준에서 금리를 결정했어야 했다. 여기서 의심이 싹텄다. 140bp 발행을 위해 금투협 모범규준의 허점을 노렸다는 얘기다. 그렇게 +140bp 초과로 적어낸 기관들은 물량 확보에서 배제됐다.

정정신고서를 보니 수수료 책정도 의문이다. 주관사는 수수료를 요율 기준으로 준다. 증액하면 수수료가 늘어나는 게 통상적이다. 하지만 GS건설은 모집 당시 30bp로 책정됐던 수수료율이 증액 과정에서 25bp로 낮아졌다. 이후 증액을 철회하자 수수료율은 30bp로 회복했다. 시장에선 이를 두고 을이 갑에게만 당한 게 아니라 '동조'했다고 봤다.

수요예측은 시장 내 투명한 공개 경쟁으로 공정성 있게 가격을 결정하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GS건설 사태가 보여주듯 회사채 발행을 증액하는 과정에서 기관들의 참여 의사는 표면화되지 않았다. 추가 청약에 대한 시장 신뢰도는 저하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통상 주문액 이상 증액을 하는 경우 발행사 조달난 해소를 위해 증권사가 미매각 리스크를 안고 가져가는 게 일반적이다. 이 경우 보통 희망금리밴드 최상단으로 스프레드 결정됐다.

시장에선 발행사와 주관사 자의대로 하는 수요예측은 필요 없다고 입을 모은다. 추가 청약을 고려해 스프레드를 결정했다는 뜻은 가격을 수요와 공급 관점에서 공정하게 책정한 게 아니라 뒷단에서 결정했다는 뜻이다. 완전한 공개시장이 아니란 이야기다.

여론이 들끓자 수요예측 규정을 다루는 금투협이 사안을 주시하겠다고 말하며 일부는 안도했다. 하지만 후속조치가 뒤따르지 않자 시장은 불안에 휩싸였다. 회원비를 많이 내는 대형 증권사를 의식한 게 아니냐는 금투협발 '2차 쇼크'였다.

결국 당국이 나섰다. 금융당국은 9일 업계와의 회사채 수요예측 제도를 논하는 간담회를 연다.

김훈의 소설 하얼빈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이토를 죽여야 한다면 그 죽임의 목적은 살에 있지 않고, 이토의 작동을 멈추게 하려는 까닭을 말하려는 것에 있는데, 살하지 않고 말을 한다면 세상은 말에 귀 기울이지 않을 것이고, 세상에 들리게 말을 하려면 살하고 나서 말하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말은 혼자서 주절거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고 알아들으라고 하는 것일진대…"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 기차역에서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이유에는 죽음 이상이 있었다. 까닭을 말하려는 게 진짜 목표였다. 재판을 통해 의미를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었다. 광장을 향해 외친 것이다.

시장에서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모두가 알아야 한다. 지금 시장에 필요한 것은 당위성이다. 발행 철회만으로 일단락짓기엔 너무 늦었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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