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홍경표 기자 = 국민연금이 그동안 국내 주식시장에서 논란이 됐던 벤치마크(BM) 복제율을 6개월 만에 없앤다. 국민연금이 BM 복제율를 통해 '중소형주 죽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비판이 시장에서 일자 결국 정책을 변경한 것으로 분석된다.

◇ 국민연금, 중소형주 죽이기 논란에 BM 복제율 삭제

국민연금은 12일 국내주식 위탁운용사에 지난 6월부터 제시한 BM 복제율을 없애고, 운용사 평가를 장기수익률 중심으로 바꾸기로 투자위원회를 통해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지난 6월 자산운용사들에게 순수주식형, 장기투자형, 대형주형은 벤치마크지수의 50% 이상, 사회책임투자와 가치주형은 60% 이상, 중소형주형은 20% 이상을 복제하라는 BM 복제율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다.

국민연금은 또 기존의 1년 수익률 기준을 없애고 3년 수익률과 5년 수익률을 50대 50으로 반영해 중장기 투자성과로 운용사를 평가한다.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은 지난 2월 선임된 이후 기금운용의 안정성을 강조하면서, 위탁운용사들에 BM을 지시하지만, 운용사들이 이를 잘 지키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유형별로 나눠 자금을 맡겨도 몇개월이 지나면 운용사들이 단기수익률 중심의 종목에 투자해 포트폴리오 유형 구분이 무색해져, 분산 효과가 약해지고 자산배분 전략도 어그러진다고 비판했다.

국민연금은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BM 복제율 가이드라인이라는 강수를 뒀고, 강 본부장은 이 조치가 투자의 쏠림 현상을 막고 중장기적으로 기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었다.

BM 복제율 강화로 국민연금은 올해 3분기까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등으로 인한 변동성 확대 속에서도 5.3%(연환산)의 수익률을 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BM 복제율로 중소형주가 죽어가고 있다고 꾸준하게 불만의 목소리를 냈다. BM 복제율을 강화하다보니 자율성이 떨어지고, 펀드매니저들은 가이드라인을 맞추기 위해 중소형주 비중을 줄이고 대형주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기관투자가들은 코스닥 지수가 하락세에 있어도 BM 복제율을 맞추기 위해 중소형주를 일괄 매도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내 주식시장에서는 강 CIO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거세졌고, 강 CIO 관련 악성 루머도 퍼졌다. 강 CIO가 몸담았던 메리츠자산운용 죽이기에 나서기 위해 중소형주를 팔고 있다거나, 고등학교와 대학교 선배인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지시로 패시브 전략을 펼쳐 삼성을 밀어주기 위해 중소형주를 버렸다는 '증권가 지라시'도 돌았다. 강 CIO가 면접에서 몰표를 받아 불공정하게 선출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도 이어졌다.

◇ '강면욱 흔들기'에 국민연금 백기…포트폴리오 변동성 확대

결국 국민연금은 BM 복제율을 폐지했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직접운용과 위탁운용과의 균형을 살리면서 국내주식 포트폴리오 전체의 위험을 낮추기 위한 조치로 BM 복제에 나섰다고 강조했지만, 6개월만에 정책을 바꾼 것이다.

국민연금은 BM 복제 대신 장기적인 '포트폴리오 일관성' 등으로 위탁운용사를 평가하겠다고 했지만, 이 또한 장기 평가고 직접적인 BM 복제보다는 효과가 떨어진다.

이번 정책 변경으로 주식 위탁운용사들은 상대적으로 투자 자율성이 높아지고 중소형주에 투자할 여력이 커지게 됐으나, 위탁운용사들에 돈을 맡긴 국민연금은 주식 포트폴리오 변동성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또 국민연금은 시가총액 1천억원 이상, 매출 300억원 이상, 반기 하루 평균 거래대금 5억원 이상 종목에만 투자해야 한다는 내부 지침도 폐지해 위탁운용사들의 '고삐'도 풀어줬다.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이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했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이 BM 삭제로 중소형주를 늘리는 것이 금리 인상기의 투자 트렌드에 적합한지도 의문스럽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기금의 한 관계자는 "금리 상승기에는 대형주가 유리한 측면이 있어 연기금들이 벤치마크 투자나 ETF(상장지수펀드) 투자를 강화하는 추세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주식 투자 포트폴리오의 정상화를 위해 BM 복제를 강화했고 상당 부문 성과가 있었다"며 "포트폴리오 일관성 등의 지표를 통해 장기적으로 위탁운용사를 평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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