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윤영숙 기자 = 미국 민주당 의원들이 주장하기 시작한 '현대통화이론(MMT:Modern Monetary Theory)'에 월가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주목할 점은 대다수 정통 경제학자들이 이를 '쓰레기'나 '터무니없는' 이론이라고 치부하는 것과 달리 월가는 다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이다.

MMT는 과도한 인플레이션만 없다면 경기 부양을 위해 국가가 화폐를 마음껏 발행해도 된다는 이론이다.

정부 지출이 세수를 뛰어넘어서는 안 된다는 통념을 깬 것으로 인플레이션이 유발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대규모 재정적자를 떠안아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5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시카고 부스 경영대학원이 유수의 학자들을 상대로 MMT의 두 가지 주요 아이디어에 대해 설문 조사한 결과, 28%가 동의하지 않으며 72%는 강하게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변하는 등 학계에서는 대체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MMT를 "쓰레기" 혹은 "미친 소리"라고 치부하는 등 경영계에서도 반응은 부정적이다.

하지만, 월가에서는 반응이 다르다. 이들은 MMT가 몇 가지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며 이를 경제 전망에 활용하거나 트레이딩 전략에까지 활용하고 있다.

골드만삭스의 얀 해치우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나는 이것을 왼쪽이냐 오른쪽이냐의 관점에서 보지 않는다"라며 "나는 전망을 제대로 얻기 위해 더 나은 가능성을 주는 것을 보려고 애쓰며 몇몇 아이디어가 유용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폴 맥컬리 전 핌코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전통 경제학에 반하는 MMT와 같은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분석에 매우 유용한 틀이었다"고 평가했다.

맥컬리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회사가 수억 달러의 수익을 낸 것은 당시 대규모 정부 부채와 높은 금리가 주는 경고 신호를 무시하고 금리가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데 베팅한 덕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이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 MMT와 다른 비전통적 접근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도왔다"고 말했다.

도쿄 소재 노무라 리서치 연구소의 리처드 구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수년간 고객들에게 "미국의 재정적자가 대규모지만, 금리는 실제 오르지 않고, 내려갈 것"이라고 조언해왔다고 말했다.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은 학계 경제학자들보다 특정 이론에 기득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집단적 사고방식에 영향을 덜 받는 측면이 있다는 게 월가 애널리스트들의 주장이다.

투자 리서치 웹사이트 GMO의 제임스 몬티에 전략가는 "나에게 경제적 접근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을 돕고 유용한 통찰력(직업적으로 투자면에서)을 제공해야 한다"라며 "그러한 측면에서 MMT는 신고전주의학을 수월하게 완파시킬 것을 장담한다"고 말했다.

투자은행 웨스트우드 캐피털의 대니얼 알퍼트 매니징 파트너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2013년에 테이퍼 텐트럼을 시작할 때 금리가 솟구치는 것에 당황하지 않은 것은 MMT와 같은 이론 때문이었다고 소회했다.

그는 지난 2년간 연준이 장기 금리를 올리기 위해 모든 것을 시도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며 MMT는 "시장과 공공 신용이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40년간의 잘못된 가정을 성공적으로 무너뜨렸다"고 평가했다.

MMT가 진보적 정치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즈 하원의원 등 정치인들만이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월가에서도 MMT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MMT가 과거 이론들이 설명하지 못했던 것들을 일부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규모 재정적자는 정부의 가용 자원을 소진하고, 금리를 끌어올려 민간 투자를 몰아내고 성장에 타격을 입히며, 인플레이션을 부채질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10년간의 상황은 달랐다. 경기침체 이후 재정적자는 크게 솟구쳤지만, 금리는 하락했고, 저축률은 증가했다. 투자 자본은 넘쳐났고, 경제는 천천히 회복됐다.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은 사상 최저치 수준에 고정됐다.

월가의 전문가들은 과거 자신들이 이러한 상황을 오판했던 한가지 이유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수십년간 주류를 차지한 경제모델들이 무너졌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무라의 구 이코노미스트는 우리는 기업들이 엄청난 투자에 나섰던 과거와 같은 시대에 더는 살고 있지 않다며 엄청난 자산이 대서양을 가로질러 순식간에 이동하고, 통화는 금에 연계되지 않으며, 커피숍은 더는 현금을 받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알리안츠 수석 경제 자문도 기술의 진보, 인구통계학적 변화, 지속해서 낮은 금리가 글로벌 경제를 더욱 변화시켰다며 "MMT가 그러한 변화가 이전에 생각한 것보다 경제적으로 더 큰 지속가능한 적자로 운영 가능한지에 대한 고무적인 논쟁을 촉발했다"고 평가했다.

ysyoon@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