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임하람 기자 = 원화의 위안화 동조화와 '프록시(proxy, 대리)' 현상이 두드러지며 외환당국과 서울외환시장 참가자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원화가 '미·중 관계의 가늠자'라는 평가까지 받으며 무역 이슈와 위안화 흐름에 특히 밀접하게 연동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11일 서울환시 등에 따르면 올해 달러-원 환율은 미·중 무역갈등 뉴스에 연동돼 변동성을 확대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지난 8월 1,220원을 돌파하며 연고점을 기록한 당시에는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 갈등과 홍콩 시위 등에 연동됐다.

당시 위안화가 달러당 7위안 이하의 가치로 떨어지는 '포치(破七)'가 발생하고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의 이슈가 트리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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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달러-원 환율 흐름과 주요 이벤트 정리, 기획재정부 인포맥스 콘퍼런스 발표자료>

◇원화의 '위안 프록시화'…韓 경제구조·통화 특성 영향

원화의 위안화 프록시 현상은 중국과의 연계가 강한 한국 경제의 근본적 구조와 해외 통화의 헤지 수단으로 활발히 활용되는 원화의 특성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한국 경제가 수출 중심, 중국과의 높은 가치사슬 연계성을 가지면서 미·중 무역갈등의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국가 중 하나인 점이 원화의 위안화 프록시의 가장 큰 이유다.

한국의 수출입과 경제 흐름이 글로벌 교역의 선행 지표로 활용된다는 점에서도 원화는 무역 갈등 등 대외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원화가 신흥국 통화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도 활발하게 활용되는 점도 원화의 위안화 프록시에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여타 신흥국 자산에 투자할 경우 비교적 자본 유출입이 자유로운 원화 파생상품 등을 활용해 헤지를 하기 때문이다.

외환 당국도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특징과 원화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위안화 프록시 문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윤태식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지난달 28일 연합인포맥스가 주최한 '2020년 국내외 경제 전망 콘퍼런스'에서 원화의 위안화 동조화와 프록시 문제를 올해 원화 흐름의 주요 요소 중 하나로 거론했다.

윤 국장은 "최근 외환시장의 이슈 중 하나가 위안화 동조화다"며 "미·중 무역갈등 등 대외이슈가 나타나면 (위안화 동조화가) 두드러지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윤 국장은 "이는 경제·금융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밀접한 관계를 반영한 것으로 (위안화) 동조화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윤 국장은 "해외 투자자나 리얼머니가 원화를 환 헤지에 대한 프락시 통화로 많이 활용하는 것으로 안다"며 "유동성이 풍부한 원화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 등을 활용해 다른 신흥국에 투자할 때 환 헤지 수단으로 원화를 이용한다"고 언급했다.

시장 참가자들도 비슷한 인식을 공유하는 모습이다.

한 외국계 은행의 외환딜러는 "위안화 동조화와 헤지 통화로서 (원화의) 활용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며 "중국과의 경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와 비교적 풍부한 유동성, 자유로운 자본 유출입에 따라 원화는 단순히 위안화의 움직임에 연동될 뿐만 아니라 헤지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딜러는 "위안화 프록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줄어드는 등 구조적인 변화가 필요한 만큼 무역 갈등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연동이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민경원 우리은행 연구원은 "한국은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글로벌 교역 전망의 선행지표로 작용한다"며 "글로벌 시장도 대외 변수에 민감한 원화의 특성을 적절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흥국 통화 특성 보이는 원화…재평가 목소리도

한편 원화가 신흥국(EM) 통화의 특성을 나타내는 데 대한 논의도 이어진다.

원화가 유독 미중 무역갈등 등 대외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슈에 따라 변동성이 증폭되는 신흥국 통화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흥국 통화라는 인식은 원화의 프록시와 헤지 수단으로서의 활용을 심화해 변동성을 증폭시키고 불안을 조성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한다.

윤 국장도 원화가 신흥국 통화로 인식되는 데 대해 시장의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외 변동성이 커질 때마다 원화의 신흥국 통화 특성이 커지는 부분은 당국도 고민스러운 부분"이라며 "어느 정도 그런 시장 인식이 불가피하다고 보지만 그 자체가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나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원화가 적극적인 프록시 통화로 활용된다는 점은 거꾸로 이야기하면 여타 신흥국 통화에 비해 자유로운 유출입과 안정성이 보장됐다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글로벌 시장 참가자들이 원화가 신흥국 통화 중에서는 비교적 안정적인 펀더멘털을 가진 통화로 평가해 헤지 통화로 활용하는 것으로도 분석할 수 있다.

한 시장 참가자는 "원화는 신흥국 통화 중에서는 가장 안정적인 펀더멘털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며 "자본 유출입이 비교적 자유롭고 원화로 헤지를 했을 때 추후 리스크가 최소화된다는 안정성 관점에서 해외 투자자들도 원화를 프록시로 활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의 외환딜러는 "원화는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의 특성상 자본 유출입이 비교적 자유로운 이점을 가지고 있다"며 "이 결과 원화가 프록시 통화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과정에서 투기 세력이 들어오지 않도록 당국의 적극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당부했다.

hr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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