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979년 10월 6일 폴 볼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기준금리를 15.5%로 4%포인트 인상한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후일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 명명된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렇게 되자 시중은행의 금리는 20%까지 치솟았고, 정치권에선 경기침체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볼커를 연준 의장에 지명한 지미 카터 대통령과 후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그러나 '표 떨어진다'는 참모진의 조언에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지켜줬다. 여러 기업이 파산하고 실업률이 10%를 넘었지만 볼커 전 의장은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멈추지 않았고, 1981년엔 기준금리를 21.5%까지 올렸다. 미국 경제가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에 호황을 누린 배경에는 이런 '철의 볼커'의 역할이 있었다.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이달 10일(미국 현지시간)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전년 대비 7.5%로 4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시장엔 인플레이션이 연준의 통제를 벗어났으며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볼커 전 의장이 그랬던 것처럼 인플레이션 해결을 위한 유동성 회수라는 임무를 떠안게 됐다는 진단이 나왔다. 연준이 경기침체를 각오하고 더 많이, 더 큰 폭으로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관측이 확산한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오는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25bp가 아닌 50bp 인상할 것'이라거나, '연내 7차례 안팎 올릴 것'이라는 전망으로 구체화했다. 현재 연준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경기 둔화에 대응해 풀어놓은 유동성에 있는 만큼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연준이 단호하게 인플레이션 억제에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시장은 그러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운이 고조되면서 다시 한번 변곡점을 맞았다. 양국 간 전쟁 가능성과 이에 대한 미국의 경고, 러시아와 미국 간 회담 소식 등이 이어지면서 가격 변수들이 출렁이자 전문가들 사이에서 급격한 금리 인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도시마 이쓰오 도시마&어소시에이츠 대표는 최근 언론 기고를 통해 "(현재) 시장의 작은 의문은 만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전투 상태에 돌입한 경우에도 연준이 금리 인상을 강행할지 여부"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연준의 금리인상 확률을 낮추는 이벤트로 작용하고 있다는 의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1일 돈바스의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의 독립을 승인한 직후 '평화유지'를 명목으로 군대를 보낼 것을 명령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는 일촉즉발의 상태로 내몰렸다. 이를 반영해 미국 채권시장에서 올해 3월 연준이 금리를 25bp 인상할 가능성은 87%로 높아진 반면, 50bp 인상 가능성은 13%까지 하락했다.

파월 의장이 양적긴축(QT: Quantitative Tightening)이라는 정책 수단을 가진 점도 그가 볼커 전 의장과 완전히 같은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힘을 보태는 재료다. 양적긴축은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하면서 보유 중인 자산을 축소하는 조치다. 연준이 자산매입을 중단하고 만기 도래하는 채권을 재투자하지 않을 경우 시중의 유동성은 빠르게 흡수된다.

연준이 3월을 기점으로 상반기 중 3~4차례 기준금리를 올리다가 2분기 말이나 3분기 초 이른바 양적긴축이라 불리는 대차대조표 축소 정책을 활용하면 급격하고 지속적인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경기침체 우려를 일정 부분 덜어낼 수 있게 된다. 연준이 내년 말까지 약 1조2천억 달러 규모로 대차대조표를 축소하면 25~50bp의 금리 인상 효과가 있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이달 25일에는 연준의 향후 금리 인상 경로를 결정할 중요한 지표 발표가 예정돼 있다. 1월 개인소비지출(PCE) 지표가 그것이다. 작년 12월 미국 PCE 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4% 오르고, 전년 대비 5.8% 올랐다. 전년 대비 상승률 5.8%는 1982년 7월 이후 최고치였다. 근원 PCE 가격지수 전년 대비 상승률은 4.9%로 1983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집계됐다. 파월 의장의 선택을 지켜보게 될 3월 FOMC는 다음 달 15~16일 열린다.(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이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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