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 열차 타려는 인파로 북새통인 우크라 키이우 역

(서울=연합인포맥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러시아 은행 7곳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등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대상으로 강력한 제재에 나섰다. 이에 따라 궁지에 몰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넘어 다른 국가로 전선을 확대하거나 금융제재에 대항해 핵이나 사이버 보복 공격을 감행하는 등 극단적 수단을 꺼내 들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신에 따르면 최근 백악관 상황실에선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배치하거나 몰도바와 조지아 등 주변국에 대한 추가 침공을 시도할 수 있는 상황이 논의됐다. 또 이달 3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자포리자 지역에 있는 유럽 최대 규모 원전 단지에 화재가 발생하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4일 아시아 금융시장이 출렁이기도 했다. 7일엔 러시아군이 핵물질과 원자로가 있는 우크라이나 물리학 연구소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시장이 급등락하는 것만큼 우려스러운 것은 인플레이션의 공포다. 오는 10일 발표될 미국의 올해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대비 7.8%로 전월의 7.5%에서 추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CPI는 최근 몇 달 동안 40년여 만에 최고치를 여러 차례 경신했다. 2월 CPI는 이달 15~16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정례회의를 앞두고 발표되는 물가 지표라는 점에서 투자자들의 시선을 끈다.

더욱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급등하고 있어 향후 근원 CPI 상승 압력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지난 주말 4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115.68달러에 거래를 마쳐 2008년 9월 22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WTI 가격은 7일 아시아 장중에는 서방의 러시아 제재에 따른 공급 차질 우려에 장중 130달러를 넘어섰다. 유가 외에도 지난 한 주 동안 유럽 천연가스 가격지표인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가격이 103.92% 폭등하는 등 천연가스, 팔라듐, 구리, 알루미늄 등 금속 가격과 밀 등 농산물 가격도 치솟았다.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올해 2분기 중 정점을 형성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 아직 시장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이번 주 발표될 2월 CPI 상승률이 생각보다 높은 수준을 나타낸다면 시장에선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크게 증폭될 여지가 생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경제 성장세가 가파르게 둔화하면서 동시에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일각에선 슬로플레이션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슬로플레이션이란 경기 회복 속도가 둔화하는 상황 속에서 물가 상승이 나타나는 것을 뜻하는 용어로 스태그플레이션과 비슷하지만, 그보다 경기 하강의 강도가 약할 때 쓰는 말이다.

누구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연준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1일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취임 후 첫 국정연설에서 '물가 통제가 최고 우선 과제'라고 언급한 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2일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3일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너무 낮은 금리 수준은 더 이상 경제에 적합하지 않다'며 '3월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25bp 인상을 제안하고 지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돌이켜 보면 연준은 인플레이션이 오래 지속되는 것에 대비해 더 빨리 움직였어야 했다'는 언급도 내놨다. 시장에선 이를 두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50bp 수준의 큰 폭 금리 인상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일시적 현상이라는 수사를 내놓으며 확장적 통화정책을 적정 수준 이상으로 오래 끌어온 것은 오판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관련해 3일 상원 은행위원회 증언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리차드 셸비 상원의원(공화당, 앨라배마주)이 '1980년대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뭐든 하겠다고 했던 선례를 따르겠냐'고 묻자 파월 의장은 '저는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이 예스였다고 역사가 기록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하지만 셸비 의원은 '그건 당신이 했던 일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뼈 때리는 지적을 했다. 파월 의장은 현재 상원의 연임 인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본질은 금융판 신(新)냉전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당시와는 금융 체력이 달라졌다. 러시아가 보유외환 가운데 위안화 채권 비중을 키워왔고, 위기 시 이를 중국에 팔아 위안화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제러미 시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 스쿨 교수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연준이 대차대조표를 고갈시킬 확실한 계획을 내놓지 않은 것이 실망스럽다'며 '연준은 이미 뒤처졌으며, 이달 50bp의 공격적인 인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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