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의 엔저' 우려 표명한 일본은행 총재

(서울=연합인포맥스) '구로다 라인'은 국제금융시장에 암묵적으로 형성돼 있는 일본 외환 당국의 환율 방어선을 말한다. 정확하게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지난 2015년 6월 10일 과도한 엔저를 견제하는 발언을 할 당시 달러-엔 환율 수준인 달러당 124엔 중후반대를 가리킨다. 추후 공식적으로 부인하긴 했지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도 그 무렵 달러화 강세를 우려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져 한때는 '오바마·구로다 라인'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근 들어선 125엔 저항선을 가리키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최근 환율이 금융시장의 화두 중 하나로 등장한 배경에는 바로 이 저항선의 붕괴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 3월 28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달러-엔이 2015년 8월 이후 6년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장중 고점 기준으로 125엔선 위로 올라선 것이다. 달러-엔은 이어 이달 13일엔 장중 한때 126엔대까지 올라서면서 2002년 5월 이후 약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엔 급등은 엔화 가치 급락을 의미한다.

특히 전일 달러-엔은 도쿄환시 장중 126.781엔까지 올라 약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가 일본 외환 당국자들의 발언에 잠시 하락한 뒤 다시 오름세로 돌아섰다. 구로다 총재와 스즈키 순이치 재무상의 발언이 그것인데, 구로다 총재는 '급속한 엔저는 마이너스'라고 말했고, 스즈키 재무상은 '(현재 상황이) 어느 쪽이냐고 한다면 나쁜 엔저가 아닐까'라고 우려했다. 그는 이어 '(이번 주에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미국을 비롯한 각국 통화당국과 의사소통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발언은 엔저가 일본 경제에 플러스라는 인식에 균열이 생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일각에선 엔화 약세에 대한 일본 정부의 우려가 순수하게 경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올해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정치권에서 엔저로 물가 상승이 심화하는 데 대한 위기감이 커진 데 따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15일 참의원 본회의에서 현재 물가 상승과 관련해 "원유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이 주요 요인"이라면서도 "환율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BOJ가 물가 목표 실현을 위해 노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최근 달러-엔 급등의 배경에는 어떤 요인들이 자리 잡고 있을까. 큰 틀에선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 노선 차이가 가장 큰 원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고공행진하고 있는 인플레이션에 대처하기 위해 기존에 과도하게 완화적이었던 통화정책의 정상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BOJ는 기존의 금융완화 노선을 지속하면서 양국의 통화가치가 조정 국면을 거치고 있다. BOJ가 채권시장에서 '지정가격 매입 오퍼레이션(공개시장 조작)'에 나서면서 금리 상승을 억제하는 것은 그 구체적 사례다.

이밖에 일본의 무역수지가 작년 11월부터 4개월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고, 올해 일본이 42년 만에 경상수지 적자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면서 엔화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나라 밖에선 미국이 자국의 인플레이션이 완화되는 효과를 노려 과거에는 용납하지 않았던 수준까지 엔화 가치가 하락하는 것을 허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달러-엔 급등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 공조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20일로 예정된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담에서 나오는 얘기들은 엔저에 대응할 국제 공조가 가능할지를 따져볼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 내내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춘계회의에도 주목해야 한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21일 4일차 회의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등과의 대화에 패널로 참석한다. 구로다 총재의 임기는 내년 4월 8일까지다. 9년간 이어진 금융완화 정책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그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해 나갈지 지켜봐야겠다. (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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