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매파'와 '비둘기파'라는 말은 특정 사안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견지하는 사람들과 온건한 스탠스를 보이는 사람들을 일컫는 용어다. 다수 기록에는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1798년 '주전론자(war hawk)'라는 말을 쓴 것이 매파라는 단어의 시초라고 소개돼 있다. 비둘기는 그리스신화에서 사랑과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의 팔에 앉아 있던 이래로 온건함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이후 매파와 비둘기파라는 말은 1960~1970년대 쿠바 미사일 사태와 베트남 전쟁 때 언론을 통해 대중화됐고, '긴축론자'와 '완화론자'를 일컫는 말로 금융시장에서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다음 달 3일과 4일 이틀간 열리는 5월 정례회의를 앞두고 일정 기간 대외적으로 메시지를 내지 않고 내부 토론을 이어가는 블랙아웃(black-out) 기간을 거치고 있다. 그러나 연준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는 페드워처(Fed Watcher)들 사이에선 연준이 이번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50bp 인상하면서 서너 차례 연속 '빅스텝' 금리 인상의 포문을 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연준이 양적긴축(QT)을 공식 발표하고 대차대조표의 실질적인 축소가 곧 이어질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그런데 이런 연준의 움직임이 글로벌 환시에서 적잖은 파장을 낳고 있다. 전일 도쿄환시에서 달러-엔 환율은 장중 최고 1.46% 뛴 130.270엔을 나타내면서 지난 2002년 4월 이후 처음으로 장중 130엔을 돌파한 후 뒤이어 개장한 뉴욕환시에선 131.25엔까지 고점을 높였다. 지난 3월 28일 달러-엔이 6년 7개월 만에 '구로다 라인'으로 불리는 125엔선 위로 올라선 후 한달 만에 차기 주요 저항선으로 꼽혔던 130엔선도 상향 돌파한 것이다.(4월19일 오전 10시 36분에 송고된 '[이한용의 글로브] '구로다 라인' 내준 日 외환당국' 제하 기사 참조.) 이제 시장에선 달러-엔이 140엔까지 올라도 이상하지 않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달러-엔 상승은 엔화 가치 하락을 의미한다.

두 기축통화가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배경에는 미국과 일본 양국 통화정책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사상 유례없는 위기에 대응해 비상조치를 꺼냈던 연준은 빠른 걸음으로 긴축 노선으로 선회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초비둘기적' 스탠스를 견지하면서 결과적으로 높은 금리를 약속하는 미국 달러화의 몸값은 올라가고, 대표적인 저금리 통화인 일본 엔화의 값어치는 하락하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행(BOJ)이 10년물 국채 연속 지정가 매입 오퍼레이션을 매영업일 실시하기로 한 것이 이달 28일 달러-엔 130엔선 돌파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BOJ는 같은 날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하기로 결정한 후 공표한 성명에서 10년 만기 국채 금리 목표치를 '0% 정도'로 유지하고, 당좌 계정 일부에 적용하는 금리도 -0.1%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앞선 금융시장 조절 방침을 실현하기 위해 응찰이 분명히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10년물 국채 금리를 0.25% 수익률로 매입하는 지정가 오퍼레이션을 매영업일 실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채권 금리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친 것이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




이처럼 BOJ가 극단적 비둘기 입장을 견지한 것은 일본 내 물가 압력이 경제 성장을 위한 정책 환경 조성이라는 그간의 스탠스에 변화를 줄 정도로 강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BOJ는 경제·물가 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종전 1.1%에서 1.9%로 수정했다. 내년 물가상승률 예상치는 1.1%로 유지했다. 이와 관련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은 "BOJ 내에서는 현행 물가 상승이 비용 요인에 의한 일시적인 상승이라는 견해가 많다"며 "지속해서 물가가 오르기 위한 임금 인상이 여전히 크게 확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이달 28일 '환율은 펀더멘털을 반영해야 한다. 엔화 약세가 경제와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신중하게 지켜보겠다'는 취지로 구두 개입을 단행했다. 다만, 통화정책의 전환 없는 환시 개입만으로는 추락하는 엔화의 운명을 바꾸기 어렵다는 게 시장 참가자들의 평가다. 바로 이 지점에서 BOJ가 올해 하반기에 통화정책 기조에 변화를 줄 것이라는 주장이 등장한다.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안내) 조정부터 수익률 곡선 통제(YCC) 정책 변화까지 다양한 방안이 거론된다. 올해 7월 참의원 선거 후 BOJ의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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