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하는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서울=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2.7.28 [국회사진기자단] toadboy@yna.co.kr

(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법치행정'. 이복현 금감원장이 여의도에 오게 된 이유는 이 네 글자에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를 콕 찍어 문제가 있는 기관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법에 기반한 제재권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지만 그렇지 못한 선택으로 연신 논란의 중심에 서서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진행 중인 행정소송이 대표적이다. 손 회장은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로 중징계를 받은 데 불복해 제기한 행정소송에서 1심에 이어 2심도 승소했다.

재판부는 금감원이 법리를 오해해 허용 범위를 벗어나 처분 사유를 구성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가 징계 사유 5가지 중 유일하게 인정했던 내용마저 법리적용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금융권 안팎에선 이번 재판부의 판결을 두고 금감원의 법리적 무능함을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회사를 제재 할 법적 근거를 인정받았음에도 이를 적재적소에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금감원 스스로 법치행정의 근간을 흔든 셈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그간 잡음이 너무 많았다"며 "법치행정은 윤 대통령이 생각하는 금감원과 공정위의 가장 우선된 일처리 방식"이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이 금감원과 공정위의 문제점을 지적한 이후 이들의 수장으로는 사법고시를 패스한 '법을 아는' 사람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금감원 설립 이래 첫 검사 출신 수장이 된 이 원장은 1972년생, '윤석열 사단'의 막내다. 이 원장에게는 항상 윤 대통령의 복심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그만큼 윤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금감원장 하마평을 두고 무수히 많은 이들의 이름이 오갔지만, 윤 대통령이 '그곳엔 갈 사람이 있다'며 일찌감치 그를 점찍어뒀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 원장이 여의도에 온 지 두 달, 금융권은 여전히 그의 말 한마디 행보 하나하나에 이목을 집중하며 각양각색의 해석을 쏟아내고 있다.

그의 등장을 사실상 라임과 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재조사 시그널로 받아들인 여의도에서는 지난 6월 말 금융투자권역 CEO 간담회를 두고도 말들이 많았다.

문제의 펀드를 대거 판매한 증권사 사장들이 참석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것을 두고 업계에선 '벌써 선 긋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왔다.

이틀 뒤 열린 보험사 CEO 간담회에는 주요 생명·손해보험사 사장들이 모두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해외 출장이 아닌 이상 검사 출신 원장과의 첫 대면식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은행권은 일찌감치 이 원장이 '이자 장사'를 두고 날린 경고장에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윤 대통령과 여당의 공세에 금감원장까지 합세해 금리 인하를 압박하자 7%를 넘어선 대출이자 상단이 곧장 6%대에 진입하기도 했다. 대통령의 발언에 이례적으로 금감원장이 가장 먼저 힘을 싣고 나서자 '실세가 왔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이 원장 취임 이후 금융권의 긴장감은 역대 최대다. 금감원의 과도한 제재는 행정소송으로 대응하겠다던 금융회사들이 그의 등장 이후 스탠스를 바꾼 지 오래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과거에는 과도한 제재로 다툼의 여지가 있었지만 검사 출신 원장 체제에서는 그럴 일이 있겠느냐"며 "그저 걸리지 않는 게 최선의 방어다. 검사와 감독을 대하는 긴장감이 예전보다 더 커진 게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최근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존리·강방천 등 금융권 내로라한 인사들의 사례는 부쩍 날카로워진 금감원의 칼날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이 원장 취임 이래 금감원에는 내부 불법행위를 제보하는 금융권 투서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이제는 숨을 곳이 없다"며 "과거엔 당연한 관행이었고, 해석의 문제로 보였던 일들이 법치행정 아래서 어떤 판단을 받게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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