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근본부터 의심하겠다. 어떠한 고정관념에도 권위를 부여하지 않겠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관가에서 흔치 않은 금융 철학자로 불린다. 지난달 출범한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금산분리와 전업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에서 금융규제의 새로운 판을 짜겠다던 김 위원장의 말은 평소 금융규제에 대한 자기 생각을 고스란히 드러낸 말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 위원장은 금융위가 첫 규제개혁에 나섰던 2008년, 금융정책국장을 맡아 금산분리 완화를 주도했다.

그 시절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과 금융감독위원회를 합쳐서 갓 출범한 금융위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한 금융위기를 보완할 제도로 은행의 소유규제 허들을 낮췄다. 비슷한 시기 전통적으로 금산분리를 엄격하게 지켜오던 미국 역시 은행의 소유규제를 완화했다.

정치권과 시장에서 '삼성 은행'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금산분리 완화의 시기상조를 우려했지만, 당시 김 위원장은 '합리적이면서 금융산업의 선진화에 필요한 제도적 정비'라며 금산분리 완화가 순환출자나 교환출자 등으로 복잡하게 얽힌 재벌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당시 금융위의 규제개혁은 내부에서 '억 소리'가 날 정도였다.

한 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과거에 그 정도의 전향적인 규제완화를 한 적이 없었다"며 "당시 금융위 사무관들이 오히려 우리에게 힘들다고 하소연할 정도로 업무 강도가 억 소리 났었다"고 회고했다.

7년이 지난 2015년,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시절 금융위는 '절절포(절대로 절대로 포기해선 안 된다)'를 내세워 두 번째 규제개혁에 나섰다. 계좌이동서비스 '페이인포'는 23년 만의 새 은행인 인터넷전문은행이 탄생하는 배경이 됐고, 각종 검사·제재에도 개혁의 바람이 불었다.

또다시 7년이 흐른 올해, 금융위는 세 번째 규제개혁을 꺼냈다.

김 위원장은 내정자 시절부터 금산분리와 전업주의에 대한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평소 차분하고 조용한 성정을 가진 그는 무슨 문제든지 스스로 고민해서 답을 찾는 것으로 유명하다.

후배들이 기억하는 김 위원장은 주말 근무가 예삿일이던 과거, 사무실 불을 끄고 문도 잠근 채 책과 페이퍼에 몰두했던 선배다. 후배들에게 부담을 줄까 봐 점심이 빈 날에는 혼자 샌드위치를 먹는 일도 잦았다고 한다.

여신협회장에 도전한 그가 직접 PPT 자료를 만들어 카드사 사장들을 직접 만나 출마의 변을 전했던 일화는 이미 유명하다.

한 카드사 고위 관계자는 "관 출신의 경우 후배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예삿일인데 김 위원장은 자료, 설명 모두 자신이 만든 것들이었다"며 "협회장이 된 이후에도 현안이 있을 때마다 카드사 사장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고 대외 관계가 수월할 수 있게 직접 뛰는 모습을 보고 확실히 다른 공무원이라 느꼈다"고 전했다.

지난 8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앞두고 진행한 기자간담회에서도 김 위원장은 하나의 앱으로 은행, 증권, 보험 등 서비스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유니버설뱅크' 플랫폼을 언급하며 전업주의 완화에 대한 의지를 전했다.

금융의 BTS 탄생을 위해 어떠한 것도 불가침의 성역이 될 수 없다는 김 위원장의 말에 금융권은 14년 전 억 소리가 났던 규제개혁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금융권에선 김 위원장이 규제개혁에 대한 남다른 성찰을 가진 배경을 그의 지난 10년에서 찾는다.

김 위원장은 예금보험공사,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삼정KPMG, 그리고 여신금융협회까지 10년의 세월을 민간에서 보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밖에서 보낸 시간이 금융개혁을 이야기할 때 큰 밑거름으로 작용한 것 같다"며 "사유의 깊이가 다르다. 흔치 않은 스타일에 업권이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고 귀띔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 새 정부 업무보고 사전브리핑
(서울=연합뉴스) 김승두 기자 =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8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새 정부 업무보고 사전브리핑을 하고 있다. 2022.8.8 kims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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