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






(서울=연합인포맥스) '18년 만에 처음으로 한 손에는 진통제를, 다른 한 손에는 (유의어나 반의어 등을 모아놓은) 사전 없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반기 의회 증언을 관전할 수 있었다.'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와 상원 은행위원회 증언에 나섰던 2006년 2월 중순 월가에선 이런 촌평이 나왔다.

비비 꼰 장황한 말투로 때때로 짜증 섞인 반응을 이끌어내던 전임자(앨런 그린스펀)와는 달리 신임 의장이 금리 전망 등과 관련해 특유의 개방적 어투로, 그러나 수위를 조절해 가면서 차분히 답변해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이다. 당시 버냉키 의장의 의회 증언 내용은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추가 금리 인상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지속적인 팽창 국면에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로써 '빅 벤(Big Ben)'이 뜨면 달러화가 단기적으로 초강세(Super Spike)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던 시장의 우려는 불식됐다.

지난 주말에는 미국 와이오밍주의 휴양지 잭슨홀(Jackson Hole)에서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재무장관, 학자 등 경제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여 금융시장 현안과 정책을 논의하는 잭슨홀 미팅이 열렸다. 3년 만에 대면으로 진행된 이번 회의에선 우리에게 익숙한 두 명의 중앙은행 수장,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버냉키가 모범을 보였던 '직설화법'을 동원해 향후 정책 방향을 설명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파월 의장은 26일 연설에서 "역사적인 기록은 (통화정책을) 너무 일찍 완화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며 "인플레 통제를 위해 긴축 정책을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플레 둔화 조짐에 기대어 그가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신호를 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지만, 대세는 아니었던 만큼 분명하게 '매의 발톱'을 드러낸 파월 의장의 스탠스가 시장의 관측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파월 의장은 9월 금리 인상 폭과 관련해서는 "7월에 이미 더 큰 폭의 금리 인상이 적절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아직 해당 회의까지 시간이 남은 만큼 앞으로 나오는 지표에 따라 이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9월 75bp와 50bp 금리 인상 가능성을 모두 열어뒀다는 의미로, 이번 주 예정된 8월 고용보고서와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20~21일)를 1주일 앞두고 나오는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금리 인상 폭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방기금(FF) 금리 선물 시장은 내년 1월 기준금리가 지금보다 150bp 높은 3.75~4.0%에서 고점에 도달할 확률을 43.4%로 가장 많이 반영했다. 이후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같은 수준의 금리로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시장은 기준금리 고점 도달 시기를 올해 12월로 봤고, 금리 수준은 지금보다 125bp 높은 3.50~3.75%로 추정했다. 이번 잭슨홀 미팅을 계기로 기준금리 고점 베팅 수준은 25bp가량 높아지고 고점 예상 시기는 1개월가량 늦춰진 셈이다.

이창용 총재는 27일 잭슨홀 미팅 외신 인터뷰에서 '돌직구성 직설화법'을 동원했다. 특히 외신에 대놓고 외환시장 개입을 언급한 대목에선 '파격'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총재는 "연준보다 우리가 금리 인상을 먼저 끝낼 수는 없을 것"이라면서 "외환시장의 쏠림이 있으면 개입할 준비도 돼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한은의) 통화정책이 정부로부터는 독립했지만, 연준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것은 아니다. 연준이 지속해서 금리를 올리면 우리 통화(원화)에 약세 압력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또 "8월 물가 상승률이 7월 6.3%보다 낮아질 수 있지만, 겨울이 다가오면서 유가가 다시 오를 수 있기 때문에 물가 정점을 논의하기는 너무 이르다"며 "환시에서 너무 과도한 움직임도 며칠 있었지만, 지금까지 달러-원 환율의 움직임은 대체로는 주요 통화들의 움직임과 궤를 같이했다"고 부연했다. 또 최근 원화 약세가 유동성이나 신용 문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다만 금융권에선 우리나라의 기준금리가 미국보다 낮아지면, 더 높은 수익률을 좇아 투자 자금이 빠져나가게 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이 총재가 선보인 파격 직설화법의 근본적인 배경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을 고려할 때 급격한 자본 유출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글로벌 머니 무브에 대한 불안이 언제든 본격화할 수 있기 때문에 통화정책당국의 수장이 선제적으로 관련 우려를 차단하고 나섰다는 시각이다.

이미 금융시장에선 신흥국의 외화부채 위험성에 대한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달러 가치가 치솟으면서 외화로 채권을 발행한 국가들이 외화 부채를 상환하는 데 드는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신흥 국가의 30%와 저소득 국가 60%가 이미 부채 위기에 도달하거나 근접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다. 아무리 펀더멘털이 건실해도 쓰나미급 파고가 몰려온다면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국제경제·빅데이터뉴스부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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