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CP가 분석한 KT&G의 주가 추이
FCP 주주제안 프레젠테이션 자료 중 발췌. DB 및 재판매 금지.

(서울=연합인포맥스) 박경은 기자 = 민영화 20년을 맞은 KT&G가 17년만에 또 다시 행동주의 사모펀드의 표적이 됐다.

문제는 2006년 칼 아이칸 연합이 제안한 기업가치 제고 방식과 올해 국내외 사모펀드가 주주행동을 통해 회사 측에 요구하는 내용이 대동소이하다는 점이다.

업계에서는 결국 민영화된 KT&G의 기업가치가 주주환원책 강화와 별개로 10여년 전에 비해 나아지지 않았고, 지배주주 없이 다수의 기관투자자가 회사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 구성 탓에 이러한 문제가 반복됐다고 분석한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외 사모펀드로부터 'KGC인삼공사의 분할 및 상장'을 골자로 하는 주주제안을 받은 KT&G가 3천5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 주당 배당금 증액 방침을 내놓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회사 측은 주주제안 내용에 대해서도 공식적인 검토에 들어갔으나, 주주제안 내용대로라면 사업 구조의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일부 주주의 의견을 그대로 따를 수 없다는 의견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김진한 KT&G 전략기획본부장은 지난 3일 열린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이날 열린 이사회에 싱가포르 사모펀드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와 안다자산운용이 보낸 주주서한의 접수 사실과 내용을 보고했다"며 "주주서한에는 중장기 사업재편, 인적분할, 주주환원 등 여러 중요한 의사결정 사항이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세부사안의 경우 시장에 다양한 시각과 입장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다양한 주주의견을 수렴하고 장기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검토하겠다"며 "심도 있는 결정을 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17년만에 재등장한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17년 전 칼 아이칸 연합의 요구사항과 '판박이'
업계에서는 이번 상황이 2006년 칼 아이칸 연합의 주주행동과 같이 경영진에 공격적인 방향으로 흐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하면서도, 주주제안의 내용이 동일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주주제안을 내놓은 두 행동주의 펀드의 지분율이 각각 1% 미만이며, 칼 아이칸이 경영권 인수를 걸고 시세차익을 노렸던 것과 달리 양사는 '경영진을 존중하는 행동주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KT&G의 주요 주주로는 국민연금공단(지분율 7.55%), 미국계 운용사 퍼스트이글(7.12%), 기업은행(6.93%) 등이 이름을 올리고 있으며, 이 밖에도 뱅가드그룹, 블랙록, 화이트박스 어드바이저스사, 오아시스 매니지먼트 등 외국계 투자자의 지분은 35.6%에 달한다.

지난 2006년 2월 칼 아이칸 연합은 5% 이상 지분 취득 공시 이후 한국인삼공사 상장, 유휴부동산 처분, 주주환원책 강화 등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투자자를 향해 주당 6만원의 공개매수를 제안하고 주식 매집에 나서는 등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으나, KT&G가 제시한 '마스터플랜'에 최종 합의하며 1년여 만에 보유지분을 분산 매각하고 1천500억원 가량의 차익을 얻은 뒤 퇴장했다.

FCP와 안다자산운용 역시 큰 갈래에서 칼 아이칸 연합과 유사한 내용의 기업가치 제고 방편을 KT&G 측에 제안했다.

담배와 인삼 사업의 성격이 달라 두 모자기업이 시장에서 제대로 된 기업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우니 인삼공사를 별도 상장해야 한다는 논리가 주요하다.

FCP는 KT&G가 보유한 비영업 자산(6조4천억원)과 인삼사업 가치(3조7천억원)의 합이 회사의 현재 시가총액(9조8천억원) 보다 크다고 주장했다.

즉, 자산과 인삼사업의 가치만 따져봤을 때 KT&G의 핵심 사업부문인 담배사업의 가치가 현재 기업가치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궐련형 전자담배 '릴'의 글로벌 전략을 수립할 것, 비핵심 사업을 정리해 잉여현금을 주주에 환원할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IB업계 관계자는 "KT&G는 지배주주가 없기 때문에 회사 측에서도 기업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공격적인 사업구조 개편이나 투자를 진행하기 어렵다"며 "경영진과 새롭게 진입한 주주 간의 싸움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에도 인삼공사의 수익성이 증대되고 있어 매각을 통한 이익보다는 사업을 성장시키는 것이 유효하다는 논리로 방어했다"며 "글로벌 기업의 밸류에이션이 모두 하락해 기업공개(IPO)가 어려운 현시점에서 인삼공사의 분리 상장은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KT&G, 꾸준한 배당금 확대에도 주가는 요지부동…사업 확장 모멘텀 어필해야
업계에서는 KT&G가 지난해 단행한 주주환원 강화 정책에 더해 사업 확장을 위한 적극적인 인수·합병(M&A) 등 사업적 측면에서의 주가 상승 모멘텀이 필요하다고 본다.

KT&G는 지난 10년간 당기순이익이 감소한 시점에도 꾸준히 배당 성향을 확대해왔으나, 2008년 주가인 9만6천원에서 나아지지 않았으며, 9만원 수준에서 답보 상태다.

주당순이익(EPS)과 주당배당금(DPS)을 비교할 시, KT&G는 이익보다 배당금이 늘어나는 속도가 더 컸다.

일례로, KT&G는 지난 2017년 EPS가 역성장했음에도 DPS를 11%가량 상향하기도 했으며, 2009년 주당 2천800원이었던 배당금은 지난해 4천800원까지 두 배 가까이 증액됐다.

분리 상장 요구를 받는 KGC인삼공사의 실적 역시 KT&G가 2006년 마스터플랜을 통해 투자자에 약속한 목표치에 도달했음에도 KT&G의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KT&G는 2006년 경영권 분쟁 이후 투자자와 합의한 마스터플랜을 통해 KGC인삼공사의 수출 실적을 끌어올려 2010년까지 매출 1조원과 영업이익 2천600억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으며, 이러한 실적 목표치는 2011년 달성됐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KT&G가 주당배당금을 늘리는 정책 대신 적극적인 사업 확장 시도를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하려는 목표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팬데믹 이후 8천억원 상당의 현금이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투입됐음에도, 시장이 평가하는 KT&G의 기업가치가 나아지지 않은 데 주목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적극적인 배당 정책으로 KT&G의 현금성 자산은 2019년 3조원을 넘어서기도 했으나, 올해 반기 기준 2조2천억원 수준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KT&G의 주당배당금이 최근 3년간 매년 증가해왔으나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 이후 주가가 큰 폭 상승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은 사업 부문의 확장을 위한 적극적인 액션을 시장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ge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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