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펀치볼'(punch bowl)'은 와인에 과일을 넣은 펀치라는 칵테일을 담는 화채 그릇을 말한다. 서양식 파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것이 돌아왔다는 건 파티가 다시 시작됐다는 뜻이다. 반대로 펀치볼을 치운다는 것은 달아오른 파티를 정리한다는 것을 말한다.

통상,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는 걸 '펀치볼을 치운다'고 한다. 버블이 절정으로 다다르기 전에 금리를 인상해서 시장을 진정시킨다는 의미다. 1951∼1970년 연준 의장으로 재임한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가 "파티가 너무 달아오르면 펀치볼을 치우는 게 연준이 할 일"이라고 한 데서 비롯됐다.

지금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두고 월가에서 '결단이 좀 늦었다'고 평가하는 펀치볼을 치우는 시대다.

"펀치볼이 돌아왔다"고 떠들던 2년 전과 세상은 정말로 달라졌다. 불과 2020년 초 제로 금리, 아니 마이너스 금리, 마이너스 유가를 외치던 시대는 갔고, 2022년 11월 전 세계 금리가 얼마나 더 올라갈지를 가늠하는 시대가 왔다.

지난주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파월 의장은 시장의 달아오른 피벗 기대를 꺾었다.

경기가 안 좋으니 연준이 돌아서지 않겠느냐(피벗)는 시장의 앞선 기대를 파월 의장은 특유의 솔직한 화법(plain-spoken communicator)으로 잠재웠다. 파월 의장은 펀치볼을 들이부을 때도 시장의 경제 회복 기대를 낮추고, 연준은 아직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점을 돌려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위가 센 직접 화법을 택해 '파티를 부디 더 즐겨주라'고 당부했다.

돈을 풀면 일단 좋다. 나만 뒤처질 수 있다는 공포, 나만 뒤처졌다는 푸념이 나올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좋다. 자산시장은 부풀어 오르는 펀치볼 파티에 얼마나 더 몸을 던졌는지에 따라 결과는 다르지만, 파티마냥 즐겁다.

이번에는 반대다. 혹시나 하며 기대했던 '시장의 기대는 너무 앞서갔구나'를 파월 의장은 더 혹독하게 깨닫게 했다. 월스트리트의 미래를 귀신같이 내다보는 심리적 잣대인 미 금리선물 시장에서는 연준의 최종 금리를 5.05%까지 내다봤다. 일부에서는 6% 전망도 나온다. 자산시장은 다시 신중해졌고 깨닫게 됐다. "이 정도 선에서 파티를 다시 열 가능성을 열어두지는 않겠구나… 돈을 거둬들이는 시기는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고 강도는 더 셀 수 있겠구나"
몇 년간 젖어있던 파티가 사라졌을 때는 힘들 수밖에 없다. 특히 이제는 흥청망청 파티의 대가를 치러야 할 때라고 하니 더욱 난감해진다.

연초부터 주식시장은 혹독한 대가를 먼저 치렀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던 자사주는 반 토막이 됐고, 주식으로 파이어족을 이루겠다는 꿈도 대부분 사라졌다. 주식시장으로 끝나는 것 같던 그 위기는 채권시장, 뒤이어 실물경제로 오고 있다. 채권금리가 치솟으면서 이미 채권 운용 쪽에서는 곡소리가 났다.

한전채부터 골병이 들던 한국의 채권시장은 강원도에 이어 흥국생명까지 더해져 이제는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돈을 조달하고, 돈을 차환하는, 돈이 돌게 하는 채권시장, 자금시장이 막히면서 본격적으로 기업들에도 도산 위기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원래 미국에서도 월스트리트(금융시장)가 메인스트리트(실물경제)보다 먼저 움직인다.

거시경제와 미시경제가 꺾이면 버텨낼 수 있는 곳은 별로 없다. 자본시장 최전방에 있는 여의도 금융투자업계는 그 바람을 더 먼저 맞았다. 이제는 위태롭기까지 한데, 그 직격탄은 시장 참여자들이 받고 있다. 이미 브로커리지, 자산운용 역풍에 리서치, 법인 영업 등 돈 안 되는 사업은 정리 수순에 들어갔고, 한 축으로 버티던 IB마저 휘청이면서 증권업계에서 살아남는 이가 몇이나 될지 걱정에 휩싸이게 됐다. 연말 구조조정 살생부도 돌아왔다.

펀치볼 파티를 벌일 때 무분별하게 초호황기를 누려왔던 것도 여의도 증권업계다. 이제 막 시작된 펀치볼 치우기 시대에 죽겠다는 곡소리를 내는 것도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그러나 증권업계 자체로 키운 위험도 있지만, 세상이 뒤바뀐 데서 나오는 피할 수 없는 위험으로 인한 위기는 맞다.

그래서 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의 이야기는 충분히 수긍이 간다. 펀치볼을 서둘러 치우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흉흉한 살생부까지 돌고 있다는 지금 여의도의 '삭풍'에도, 박 회장의 미래에셋은 올해 연말 인사 키워드로 그 찬 바람을 막을 유리 벽, '격려'를 꺼냈다.

작년 호황기에 그는, 세대교체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정리했다. 일종의 야단이었다. 조직이 동요하자 최현만 회장에게 자신의 타이틀까지 넘겨주면 조직을 추스른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반대가 끌리는 이유'를 실천 중이다.

격려의 의미로 유학의 경험도 후배들에게 물려주겠다고 한다. 그 역시 유학을 통해 큰 변화를 맞이했던 만큼, 후배들 역시 하버드로, 스탠퍼드로 내보낼 예정이다. 미래의 수많은 박현주들이 빚어낼 펀치볼, 대세와 다른 선택이라서 더 궁금하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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