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김정현 이재헌 기자 = 지난 8일 새벽 6시30분.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카만 새벽, 인적이 끊긴 과천향교 앞으로 하나 둘 발걸음이 모였다. '여의도 채권 산악회'의 42번째이자 2023년 신년회에 참석하려는 회원들이다.

채권시장의 역대 최악 난이도였던 2022년이 지났다. 심신에 끼치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등반으로 푸는 서울채권시장 참가자들 모임인 여의도 채권 산악회. 올해 첫 발을 연합인포맥스가 함께했다.

집결 장소와 위치는 대부분 매주 동일하다. 이번주 참석하는 인원은 일요일 새벽이 돼서야 알게 된다. 약속한 장소에 도착하면 참석, 그렇지 않으면 불참이다. 6시40분쯤이 되고 슬슬 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산길을 걸으며 도란도란 나눴던 말소리가 1시간이 지나자 잦아들었다. 높아진 금리보다 우뚝 솟은 산을 오르며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위로와 격려를 나눈다. 서로의 발소리를 들으며 걷다보니 어느새 연주암이다. 해가 뜨기 직전 딱 맞게 도착했다. 산 아래 미세먼지를 뚫고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올해 소원을 각각 빌었다.

정상에 올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길 몇 분. 곧바로 하산한다. 회원들 간의 격의 없는 소통이 비로소 이뤄진다. 하산이 더 중요하다는 이치를 깨달은 그들은, 올해 '대박'보다는 덜 아프면서도 무난한 한 해를 기원했다.

8일 여의도 채권 산악회 관악산 등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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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현석 케이프투자증권 이사를 회장으로 '여의도 채권 산악회'가 결성된지 이제 1년이 됐다. 여느 때처럼 산을 즐기던 그는 친분이 두터운 채권시장 참가자들과 작년 1월 1일에 일출을 보며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으기로 했다. 특별한 장벽 없이 채권시장 참가자 누구라도 격의 없이 올 수 있도록 이름도 일반 명사들을 붙여서 만들었다. 보통 아침 6시 정도에 등반하는 일정을 공지하고, 스케줄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는 자유로운 방식이다.

4명으로 출발한 산악회는 이제 규모가 10배 정도가 됐다. 명절이나 각종 연휴를 제외하면 줄곧 등반을 잡아 연 40회를 넘겼다. 관악산부터 시작해 지리산, 설악산 등 반경도 넓어졌다.

양현석 이사는 "2021년에 갑자기 무료함과 공허함을 느끼게 됐다"며 "채권시장 친구들끼리 등산을 하며 얻었던 것들을 함께 하고 싶어 주위에 소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의도 채권 산악회는 등산에 초점을 맞춘다. 지방 일정이 아니면 하산하고 간단히 식사를 마친 오전 11시 헤어진다. 가정도 지키고 건강도 좋아지니 일거양득이다. 이제는 가정에서도 산악회 활동을 응원하고 리본을 제작해주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사실 작년 서울채권시장은 마냥 취미를 즐기기 좋은 분위기는 아니었다. 국고 3년물 금리는 한 해 동안 최종호가 기준으로 192.4bp가 뛰었다. 시가평가를 도입한 이래 최악의 연간 상승폭이다. 작년 12월을 제외하고 분기 말마다 고비가 있었다.

특히 작년 9월에는 14일부터 26일까지 9거래일 동안 101.2bp가 급등했다. 우리날 추석 명절 이후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충격에 속절없이 떠밀렸다. 정부-한국은행의 시장 안정 조치가 나오기 전까지 붕괴 위험에 내몰린 것이다.

여의도 채권 산악회는 극심한 패닉을 겪은 주간에도 산에 올랐다. 같은 업계의 종사하는 산악회는 함께 시간을 공유하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위안이 됐다.

양 이사는 "처음 올라갈 때는 사는 얘기도 하고 시장 얘기도 하고 고민도 나누고 하다가 숨이 찰 때쯤부터 서로 말없이 오르기만 한다"며 "정상까지 가서도 서로 별말이 없지만 그 시간을 나누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된다. 하산할 때 나누는 이야기가 생각을 정리하고 아이디어를 얻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올해 일출을 보면서 산악회가 바라던 소망은 뭘까. 시장 관련된 바람으로는 무난한 1년을 바랬다고 귀띔했다.

8일 등반을 함께한 여의도 채권 산악회 회원은 "큰 욕심을 바라지 않는다. 3년 동안 모두들 힘들었던 만큼 2023년은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8일 연주암에서 여의도 채권 산악회 회원들이 일출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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