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958년 개띠해에는 100만명이 넘는 아이가 태어났다. 요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들은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2인용 나무 책상에 셋이 앉아 공부했다. 그것도 모자라 복도에 책·걸상을 가져다 놓고 교실 안 칠판을 쳐다보며 수업을 들어야 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진학 때는 이전 세대와 달리 고교입학고사 대신 평준화 제도로 입학해 이른바 '뺑뺑이 세대'라고도 불렸다. 이들이 공식적으로 은퇴하는 2018년에는 인력 시장의 혼란이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지만, 그 이후로도 '58년 개띠' 전성기는 꽤 오랜 기간 이어졌다.

1차 베이비붐은 1955~1963년이다. '58년 개띠'는 베이비붐의 초반 세대. 그 마지막 세대는 '63년 토끼띠'다.

2023년, 경제권력의 바통이 1963년생으로 넘어가고 있다. 특히 여의도 증권업계에서 뚜렷한데, 이들의 상당수는 '82학번'이다.

1981년에 대학에 입학한 81학번은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 후 도입한, 지금은 기억에도 희미해진 졸업정원제 첫 세대다. 졸업정원제는 쉽게 말하면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
본고사 폐지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81학번 대상 입시에서 서울대에 초유의 입학정원 미달사태가 벌어졌다. 82학번은 그 여파에 졸업정원제까지 더해 입학생 숫자가 대폭 늘었다. 서울대는 1981년 입학생을 대상으로 한 입시에서 3천315명을 뽑았는데, 1982년 입학생을 대상으로 한 입시에서는 무려 6천630명을 선발했다.

다른 학번을 압도하는 인원수로 서울대를 비롯한 이들 82학번은 이른바 '똥파리 학번'으로 불리게 된다. 무리 지어 몰려다니는 데다 숫자 82를 그대로 발음해서 마치 고유명사처럼 자리 잡았다.

통상 증권업계에서 58년 개띠를 대표하는 게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라면, 63년 토끼띠를 상징하는 게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이다.

김 회장은 동원그룹의 장남, 이른바 '재벌집 아들'로 태어났으나 그룹 가업이라는 안정적인 곳이 아닌 상대적으로 불모지였던 금융업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일궜다. 대우증권, 현대증권 등 대형 증권사 인수합병(M&A) 대전에서 밀려 어찌 보면 뒤처졌던 한국금융지주는 몇 년간 칼을 간 덕에 미래에셋의 대항마가 됐다.

한국금융지주와 계열사인 한국밸류운용이 보유한 카카오뱅크 지분을 한국투자증권에 넘기면서 한국금융지주 대표 자회사인 한국투자증권은 자기자본 9조원대로 우뚝 서게 됐다. 미래에셋증권을 넘볼 수 있는 사실상 2023년 가장 기대되는 증권사가 한국투자증권이다. 당장 자기자본 8조원 이상일 때 가능한 종합투자계좌(IMA)와 부동산 담보신탁업무 등으로 영역을 확대할 수 있다. 어려울 때 사람 뽑고 어려울 때 과감한 자본 효율화를 할 수 있는 한국금융지주 색깔에 걸맞은 김 회장의 행보였다.

이미 여의도에는 자본시장을 움직이는 63년생, 82학번 군단이 있었다. 그 시작은 서울대 82학번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전문성을 살려 서울대 기금을 운용하면서 끈끈한 인맥을 유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대표 주자로는 '메리츠는 그의 등장 전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오는 김용범 메리츠금융지주 부회장, '그의 손에서 IB시장 판도가 바뀐다'는 평가를 받는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 등이 있다.

부동산PF 사태가 터졌을 때 가장 타격이 클 것이라 예상됐던 메리츠증권은 대부분을 선순위로 구성한 덕에 부동산 가치 하락에서 살아남았다. 또, 대형사들의 희비를 갈랐던 채권 운용에서 규모를 축소하는 방식으로 운용수익을 방어해 사실상 2022년 순이익 1등이 됐다.

실제 다른 증권사들이 금융시장 변동성으로 채권평가손실을 대거 냈을 때 메리츠증권은 깜짝 실적을 보여줬다. 이자율 관련 파생상품을 통해 채권 운용손실에 대응했고, 손실을 헤지기법을 통해 이익으로 바꿨다는 점에서 '역시 메리츠'라는 탄성 섞인 얘기가 메리츠증권을 향해 나오기도 했다.

증권뿐 아니다. 김용범 부회장이 메리츠화재로 옮긴 뒤 그 기록은 메리츠화재가 다시 쓰고 있다. 7분기 연속 분기별 최대 당기순이익을 경신하며 지난해 손보업계 판도를 흔들었다. 실제 메리츠화재는 1위 삼성화재를 넘보고 있다.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도 못지않다. 오너 없는 초대형투자은행(IB)에서 첫 사장이 된 그가 대학시절 김우중 전 대우증권 회장으로부터 투자를 끌어낸 사연, 그 인연으로 대우그룹에 들어왔다가 대우증권 자금부장으로 대우그룹 자금을 총괄했던 사연 등은 이미 알만한 사람들에겐 잘 알려져 있다.

정 사장은 대우그룹 위기에 자금담당으로, 대우그룹 사태를 몸소 체험했다. 당시 그 안에 있으면서도 대우사태 당시 비판적 시각을 유지했으며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후 채권시장에 영향력을 키웠다.

NH투자증권 특성상 채권북이 커 지난해 실적에서는 졌지만, 올해는 예상보다 큰 폭의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가장 큰 '래빗 점프'가 가능한 곳 역시 정 사장이 이끄는 NH투자증권이다.

정 사장은 여의도 파크원사업을 주도해 단일 프로젝트에서 올린 수익으로는 업계 내 거의 최대 규모를 이뤄냈다. 특히 정 사장은 대우증권 자금부장 출신답게 지난해 레고랜드 사태에서 가장 안정적으로 자금을 운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채권통으로 증권사 사장에 오른 김신 SK증권 대표, 공무원에서 IB전문가로 성공적으로 변신한 전병조 전 KB증권 대표 역시 각각 서울대 경영학과, 경제학과 82학번이다. 미래에셋증권 초창기 멤버로 미래에셋 성장에 기여했고, 현재는 미래에셋생명을 맡은 변재상 대표는 법학을 전공한 82학번이다.

동갑내기 토끼띠는 또 있다. 장석훈 삼성증권 사장, 박정림·김성현 KB증권 대표이사, 오익근 대신증권 대표이사 역시 1963년생 대표주자다. 보험업계에서는 최문섭 NH농협손해보험 대표이사, 김기환 KB손해보험 사장이 손꼽힌다.

업계 내로라하는 토끼띠 선수들의 면면을 읊조리자니 이들이 살아갈 올해의 계묘년도 꽤 궁금해진다.

대공황 시대를 패러디한 '대퇴사의 시대', 최소한의 할 일만 하는 심리적 퇴사를 일컫는 '조용한 퇴사'가 기류가 된 지금, 63년생 리더들은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개인의 삶이 강조되고 있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1963년생 토끼띠, '똥파리' 그룹 경제권력들의 리더십은 이전 세대와는 다른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일정한 조건을 달아 그룹을 만들었다면 그 그룹에 대한 평가는 당연한 일이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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