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재고는 넘치고 연결성은 모호하다.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가 세초(歲初)에 마주한 화두다.

26일 러시아 모스크바주 기온은 영하 3도. 서울은 영하 5도였다. 혹한의 상징인 모스크바를 넘어서는 추위가 한반도를 습격한 이날, 삼성전자는 서초구 우면동 서울 R&D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신제품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공개했다.

신제품은 '연결성'과 '친환경'을 강조했다. 지난해부터 삼성전자가 혁신으로 밀고 있는 '초연결'과 '스마트싱스'의 첫 예시다.

삼성전자가 말하는 연결성이란 모든 가전과 스마트폰 등을 연결해 통합 관리, 소비자의 생활과 전력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스크바를 넘어서는 추위 속의 이번 간담회는 삼성전자가 직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를 담았다.

첫 번째는 애매하다고 지적받는 '연결성'이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가전 박람회 CES에서도 '스마트싱스'를 필두로 컨셉 부스를 마련했지만 직접 와닿는 혁신은 아니라는 지적을 받았다.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 겸 생활가전사업부장 부회장과 이영희 글로벌마케팅실장 사장은 "의도된 전략"이라며 한목소리를 냈지만, 소비자 입장에서 보자면 '굳이 이런 노력까지…' 하는 생각에 외면할 위험이 있었다.

새해 벽두 삼성전자가 연결성을 강조하며 선보인 신형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시뮬레이션은 이런 점에서 진일보했다.

반려동물의 털 길이까지 탐지해 온·습도를 조절하고, 멀리 외출할 때는 갤럭시 워치로 위치를 추적해 에어컨 작동을 멈추겠냐는 알람을 보내온다. 소비자의 삶 속에서 연결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직접 보여줬다.

두 번째 과제는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가 직면한 현실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가전 판매는 부진하고 조직도 어수선하다.

최영준 생활가전사업부 상무는 연초에 에어컨 신제품을 선보이는 이유에 대해 "결혼, 이사 등 연간 계획과 맞물려 에어컨을 구매하기 때문에 출시 시기는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언뜻 듣기에 그럴듯하지만 최근 거시경제와 인구동태를 살폈다면 출시 시기까지 고려한 세밀한 접근 전략이 아쉬워진다.

국토연구원이 매달 발표하는 '부동산시장 소비 심리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1월까지 서울 주택 매매시장 심리지수는 통계 집계가 시작된 11월 이후 최저치인 79.2를 기록했다. 주택 소비심리지수는 95 미만이면 하강으로 본다.

실구매를 하겠다는 대답도 '12개월 이후'라는 대답이 75.3%로 압도적이었다. 집을 살 의향이 있는 가구 대부분이 1년 후에나 생각해보겠다는 의미다. 이사에 따른 가전교체 수요라는 전제가 한차례 휘청이는 대목이다.

혼수 수요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연도별 혼인 인구는 매년 가파르게 하락하고 있다.

연도별 혼인 건수.
[출처: 통계청]


재고사정도 만만치 않다.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소비 침체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의 재고자산 중 '제품 및 상품(완제품)'은 19조8천242억 원에 이르렀다. 전기말 13조 원 대비 7조 원 가까이 늘었다.

'삼성전자 세일페스타' 등으로 타개책을 모색하고는 있으나 이런 거시적 배경을 살펴보면 임시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증권가에서는 지난해 4분기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 영업이익을 2천억 원 초반대로 추산하고 있다. 전 분기 대비 30%가량 하락한 수준이다.

여기에 지난해 갑작스럽게 이재승 생활가전사업부장이 사임하면서 수장 자리도 공석인 상태여서 조직 안정성도 떨어졌다.

삼성전자는 DX 부문 임직원을 대상으로 생활가전사업부 인력을 모집하며 일시금 2천만 원 지급 등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선행연구개발조직인 삼성리서치 산하에 차세대가전연구팀을 신설했다. 삼성리서치에 생활가전 담당 조직이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이달 초 CES 기자간담회에서 "삼성 비스포크로 글로벌 시장을 적극 공략해 신규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이 유효할까. 세밀하고 치밀한 전략일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기업금융부 김경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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