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크루거 미 스탠퍼드대학교 석좌교수



(서울=연합인포맥스) 서영태 기자 = 우리나라 반도체업계를 딜레마에 빠뜨린 반도체법(CHIPS Act)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앤 크루거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는 26일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세계경제연구원(IGE) 창립 30주년 기념 국제콘퍼런스에서 이 같은 시각을 전달했다. 이번 특별 콘퍼런스는 '지정학적 도전, 기후변화 위기, 그리고 세계 경제 미래'라는 주제로 열렸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서 수석 부총재를 맡았던 앤 크루거는 "전문가들은 반도체법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며 "미국이 반도체 생산설비를 자급자족하고, 모든 칩을 자체 생산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비현실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8월 미국에선 자국 내 생산시설을 짓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제공하는 내용의 반도체법이 발효됐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전략 물자로 떠오른 반도체의 공급망을 미국 내로 끌어오겠다는 포석이다. 다만 보조금을 받는 기업은 시설접근을 허용하거나 초과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독소조항 때문에 한국 반도체 기업의 고민이 깊어졌다.

앤 크루거는 미 정부의 보조금 지급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조금을 아무리 줘도 미국에서 칩을 만들면 외국의 경쟁사보다 40~50% 정도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 정부가 미국 내 반도체 제조를 지원하고자 보조금을 충분히 늘리면 재정적자 문제로 이어진다고 꼬집었다.

미국은 2022년 회계연도에 1조3천700억달러 규모의 재정적자를 기록했다. 최근 미 정치권에선 국가부채 한도를 둘러싸고도 논란이 한창이다. 야당인 공화당이 부채한도 상향 조건으로 연방정부의 지출 삭감을 주장하며, 바이든 행정부와 맞서고 잇다. 현재 미국의 국가부채 상한선은 31조4천억달러다.

앤 크루거는 여러 나라가 함께 목소리를 내야 미 정부가 보다 빨리 반도체법의 결함을 깨닫고, 법안 개정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했다. 그는 "보호주의적인 글로벌 분위기로 전환하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을 모두가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많은 이들이 보호무역이 늘어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게 아닌지 의견을 내고 있다"며 "만약 사실이라면 세계 경제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경험했던 것보다 훨씬 더 침체할 게 분명하다"고 했다.

ytseo@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3시 48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