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윤은별 이규선 기자 = 빠르게 둔화하는 한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세가 원화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의견에 대해 외환시장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다만 서울외환시장 참가자들은 구매력평가설에 대해 환율을 결정하는 다양한 이론 중 하나라며 이를 통해 환율의 향방을 가늠하긴 어렵다고 전했다.
 

금융통화위원회 기자간담회 하는 이창용 총재
(서울=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신축 본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를 마친 뒤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3.5.25 [사진공동취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 총재는 지난 25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구매력 평가설이라고, 물가상승률이 높으면 그쪽(해당국 통화)이 더 절하되게 되어 있다"라면서 "지금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우리보다 지금 2%P 이상 높은 수준이 계속되고 있는데 그것만 보면 중장기적으로 우리 원화가 강화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

◇한국 물가상승률 급속도로 안정…원화 강세 요소?

통상 낮은 물가 상승률은 자국 통화 약세를 야기한다.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가 비둘기파 통화정책의 근거로 해석되는 탓이다.

그러나 이 총재가 언급한 '구매력평가설(PPP)'에 따르면 낮은 물가는 자국 통화 강세를 만드는 요인이다.

구매력평가설이란 환율이 각국의 물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환율 결정 이론이다. 예컨대 같은 재화에 대한 가격이 한국보다 미국에서 비싸다면 미국의 소비자는 한국의 재화를 구매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의 통화 수요가 늘면서 한국의 통화는 절상되고 반대로 미국의 통화는 절하된다는 내용이다.

구매력평가설을 대입한다면 최근 한국과 미국의 인플레이션 추이는 이 총재의 말대로 '원화 절상, 달러 절하'를 가리키고 있다.

한국의 물가 상승세는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 한국의 지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7%로, 지난해 2월 이후 처음으로 3%대를 기록하는 등 최근 완만한 우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근원 CPI 상승률은 4.6%를 기록했다.

반면 미국의 지난달 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4.9%를 기록했다. 근원 CPI 상승률도 5.5%를 기록했다. 상승세가 둔화하는 추세지만, 여전히 절대적인 물가 상승률이 한국보다 높다.

구매력평가설에 따르면 한국의 물가 상승률이 1%P 이상 낮아 원화가 강세로 갈 수 있는 여건인 셈이다.

 

 

 

 

미국 뉴욕주의 스타벅스 커피류 가격
'fastfoodmenuprices.com' 갈무리

 


글로벌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의 커피 가격으로도 환율 추정이 가능하다. 현재 스타벅스의 카페 라테 그란데 사이즈 가격은 한국에서 5천500원이지만, 미국 주요 주에서는 4.75달러 수준이다.

미국 내 주요 프랜차이즈 메뉴 정보를 제공하는 'fastfoodmenuprices.com'에 따르면, 뉴욕주에서 카페 라테 그란데 사이즈 가격은 4.78달러다. 로스앤젤레스가 위치한 캘리포니아주에서의 가격은 4.67달러, 뉴저지주에서는 4.75달러다.

구매력 평가설에 따라 이 커피 가격 차이를 기준으로 달러-원 환율을 계산하면 1,150원 부근이 돼야 한다. 현재 환율인 1,300원대 초반에서 10% 이상 내릴 수 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시장·학계 "구매력평가설은 이론 중 하나…전망 근거로 보기 어려워"

그러나 서울외환시장 참가자들은 구매력평가설만으로 환율의 향방을 가늠하긴 어렵다고 진단했다.

제한된 환경에서 성립하는 가설일 뿐, 실제 현실에 적용되기엔 여러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다.

한 외환시장 참여자는 "이론적인 관점에서 원화 절상 요인이 있을 수 있다"면서도 "구매력평가설은 물가가 높으면 물가가 낮은 나라에서 재화를 즉시 구입할 수 상호 대체 자산이 있다는 전제하에 작동되는 이론이다. 현실에선 작동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달러-원 환율은 펀더멘털을 반영해 형성돼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상황, 수출 등을 고려했을 때 원화는 절하 압력이 강하다"고 말했다.

다른 외환시장 참여자도 "환율 형성에는 단기적인 환율 움직임, 시장 포지션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에 구매력평가설만으로 설명하긴 쉽지 않다"면서 "이 총재의 언급은 장기 시계에서 인플레이션이 차츰 안정되면 원화의 추가 절하를 막을 수 있다는 취지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삼모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도 "실증 분석을 하면 구매력평가설이 맞는다고 뚜렷하게 나오진 않는다. 여러 환율 결정 이론 중 하나"라면서 "현실에선 미국의 금리 결정과 경상수지가 가장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원화 절상을 제약하는 수출 여건 등이 개선된다면 물가 차이가 절상 계기로 작용해, 이론적인 환율 산출 가격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시장 참가자들은 설명했다.

◇금리평가설도 마찬가지…한미 금리차 확대에도 원화 버티는 이유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 폭이 커지고 있음에도 원화가 그만큼의 약세를 보이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로, 환율을 결정하는 변수가 다양하기 때문이다.

앞서 한국은행은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못 미치는 규모의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은 1.75%P까지 확대됐다.

유례 없이 높은 한미 금리 역전 폭에 원화 절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실제 달러-원 방향은 우려와 달랐다.

지난해 10월 무렵 달러-원이 1,440원대에 달할 만큼 원화의 급격한 절하가 발생했을 때 한미 금리 차는 0.25%P에 불과했다. 올해 들어 금리 역전 폭은 1.75%P까지 확대됐지만, 달러-원은 연초 1,200원대까지 하락한 후 상승한 뒤 1,300원대 초반에서 추가 상승이 막히고 있다.

이 총재 역시 지난 25일 "환율을 결정하는 것은 금리 격차라는 프레임워크(틀)를 벗어나 주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한은 관계자는 "한국과 미국 간의 금리 차이보다 미국의 통화정책 불확실성과 글로벌 위험 투자 심리가 달러-원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eb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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