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남승표 기자 = 1990년 대한민국 서울을 방문한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는 한강변을 따라 군사기지처럼 들어선 아파트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녀는 이런 서울의 풍경을 보고 아파트 공화국을 떠올렸다고 한다.

단독주택에서 다가구, 다세대를 거쳐 국민주거양식으로 자리잡은 아파트. 한때 주상복합과 타운하우스가 나오며 아파트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거양식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지만 철옹성은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삼성물산이 지난 23일 오랫동안의 침묵을 깨고 새로운 주거 개념을 들고 시장을 찾았다. '넥스트 홈'이라 명명한 청사진에서 삼성물산은 획일적인 주거 양식을 깨고 각각의 삶의 형태, 필요에 맞는 집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더 넥스트 발표회
[출처: 삼성물산]


넥스트 홈에서 제시한 아파트의 미래는 상당히 매력적이다. 층간소음에 강한 라멘구조를 채택하되 이전의 문제가 됐던 내부 기둥은 외벽으로 밀어 세대 내부 공간 전체를 확보했다. 배관 등은 양쪽 끝 벽으로 밀어내고 바닥은 일정 높이로 띄워 원하는 구조를 마음껏 구현하게 했다. 층간소음으로부터의 자유와 구조변경의 자유를 모두 시도했다.

넥스트 홈이 던져준 놀라움에도 기자의 머리에서는 의문이 남았다. 아파트여야만 하는가. 상당한 자유도를 부여한 점이 놀랍지만 단독주택만큼은 아니지 않은가.
김명석 삼성물산 주택본부장(부사장)은 기자의 질문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들여 대답했다. 그의 대답을 들어보자.
"아파트라고 하는 주거 형태의 굉장한 장점들이 있다. 보안, 공동 커뮤니티나 대형 커뮤니티를 활용한 서비스, 안정적인 단지 관리. 이런 것은 단독주택과는 다른 가치라고 생각한다."
"단독주택은 외부로 자기가 확장하거나 이런 것이 굉장히 자유롭고 자기만의 야드(정원)가 있는데 아파트는 그런 부분을 공용화하고 외관에 대한 부분들이 규격화되어 있거나 정리되어 있는 형태가 일반화됐다."
"저희가 집중한 것은 이게 벽으로 다 구획되다 보니 모든 사람들의 삶이 다 똑같아지는 것 아니냐는 생각과, 그리고 조금 더 확장을 해보면 대한민국의 집이라는 게 입지에 따라 재화로 존재한다. 아파트가 비싸나 싸다 했을 때 사실 평면 구조는 똑같다. 이런 부분들이 맞는 것인가 하는 궁극적인 의구심이 있다."
김명석 삼성물산 주택본부장
[출처: 삼성물산]


김 본부장의 답변은 체제를 붕괴시킬 혁명보다는, 아파트라는 체제 내에서 추구할 수 있는 변화의 극대화를 노렸다는 이야기로 들렸다. 어쩌면 지극히 삼성다운 대답이다.

물론 넥스트 홈이 현실에 나오기까지 거쳐야 하는 관문도 만만치 않다. 신기술인 만큼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하고 이를 구현할 협력업체와의 의사소통도 중요하다. 또 라멘구조가 가지는 높은 층고에 따르는 수익성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도 관건이다.

어쨌든 집이 재화로만 치부되고 있는 현실에서 주거 양식에 대한 화두를 던진 삼성물산의 행보가 반갑다. 다른 건설사들의 분발을 바란다.

spna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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