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국민연금기금 운용' 이력 한 줄이 꽤나 돈 되던 시절이 있었다. 연금에서 대규모 자금을 운용해 본 경험은 민간 금융기관으로 이직했을 때 사원에서 단번에 부장, 임원에서 최고경영자(CEO)로 가는 지름길이었고, 연봉 계약에서 억대를 움직일 만큼 강력했다. 여의도의 능력자들은 자연스레 국민연금을 향했다.

지금은 아니다. 지난 6월 국민연금은 기금 1천조원 시대를 함께 준비할 자산운용전문가를 모집했지만 2.9 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채용 경쟁률은 2017년을 기점으로 계속 내리막이다.

여의도의 능력자들은 이제 국민연금을 향하지 않는다. 1인당 2조원을 주무를 수 있는 국민연금기금 운용역의 위상이 예전만 못해진 것은 확실하다. 이제 연금 출신이라는 점이 최고투자책임자(CIO), CEO 자리의 보증수표가 되지 못한다.

1천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기금 운용수익률이 1%포인트(p) 높아지면, 국민연금 보험료 2%p 추가 부담을 없앨 수 있다. 1%p 수익률이 제고되면 기금 소진 시점이 5년 늦춰진다. 우리가 내는 보험료율을 1%p 높이면 기금 소진 시점은 2년 연장에 불과하다. 결국 보험료율 인상 등의 모수개혁보다는 운용 부문의 개혁이 더 중요한 시점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성공적인 자산운용의 핵심은 사람이다. 이달 초 기금운용발전전문위원회가 내놓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부문의 개선사항은 이런 핵심을 잘 담아놨다.

결론은 민간시장 대비 경쟁력 확보였다. 우수 운용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직접적인 수단은 운용역에 대한 '총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총보상은 기본급여, 성과급여, 부가혜택 등으로 구성된다. '양질의 경력으로 더 나은 전직 기회' 역시 보상 중 하나다.

그럼, 현재의 총보상은 어떨까. 기본급여는 민간시장 대비 상위 50% 수준이다. 성과급여는 민간에 비해 변동성은 작으나 절대 금액 역시 높지 않은 수준이다. 부가혜택은 따로 없다. 지방근무라는 근무 환경으로 인해 우수 인력의 유치에 있어 부가혜택은 오히려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게 기발위의 결론이다.

과거 더 나은 취업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기대 역시 유인기제로 크지 않다. 국민연금기금 운용역이 퇴사해 3년 이내에 업무 관련성이 있는 금융기관에 채용될 경우 해당 금융기관은 기금 관련 사업 참여에 일정 수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이해상충 문제를 차단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런 불이익을 무릅쓸 금융사는 많지 않다.

'큰물'에서 놀아볼 기회도 많지 않다. 국민연금은 글로벌 투자 포트폴리오를 운용하는 '유니버설 오너'지만, 적극적인 해외 파견, 현지 인력 직접 채용 등이 어려운 '로컬 플레이어'에 머물고 있다. 유니버설 오너란 한 나라 전체 업종의 주식을 보유한 거대 기관투자자를 말한다. 특정 기업이나 산업의 주주가 아닌 해당국 자본시장 전체의 주주라는 얘기다. 그런데 가장 활발한 투자가 일어나는 미국만 해도 서부 지역조차 커버하지 못하는 게 국민연금기금의 현실이다. 해외 사무소를 확대하면 기회를 찾는 젊은 인재가 올 수 있다.

정치적 이슈에 갇힌 서울사무소 설치 문제 역시 투자의 현지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국내 대체투자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곳은 서울이다. 해외 연기금은 공항 인근에 사무소를 열어 오가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기도 했다. 한국이라고 서울사무소, 제주사무소를 못 둘 이유가 없다.


기금운용발전전문위원회의 국민연금 기금운용 개선사항


국민연금은 공적연금일까. 아니면 일종의 펀드, 금융상품인 신탁자산일까. 정체성이 무엇이든 국민연금 존재 이유는 가입자의 노후소득 보장에 있다.

지난 18일, 국민연금은 서른 여섯번 째 생일을 맞았다. 이날 김태현 이사장은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한 국민연금의 안정적인 자산 운용은 국민의 버팀목이 돼야 한다고 했다. 지금의 연금개혁에 전사적인 역량을 결집하는 이유도 여기서 찾았다.

시장에서는 국민연금 제도에서 기금을 빼자는 목소리가 크다. 캐나다 CCPIB, 뉴질랜드 Super Fund, 싱가포르 GIC의 사례를 언급하는 이들도 많다. 기금 운용은 '진짜' 전문가의 영역이다. 그래야 '진짜' 국민 노후의 버팀목이 될 수 있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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