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1998년 12월 9일자 주요 조간 1면에는 '왜 미래에셋인가!'라는 문구와 함께 펀드매니저를 내세운 광고가 실렸다. 미래에셋자산운용투자자문이 뮤추얼펀드 출시를 기념하면서 낸 광고였다.

 

 

광고에 등장한 강길환, 선경래, 구재상, 김영일, 이병익, 서래호는 당시 모두 미래에셋의 젊은 운용역이었다. 펀드를 실제 운용하는 매니저의 얼굴과 이력을 처음으로 공개한 이 광고는 투자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고, 광고 효과는 꽤 컸다. 이 광고 아이디어는 박현주 회장에게서 나왔다. '박현주 1호' 펀드는 증시 상황과 광고 효과가 맞물려 오늘날 미래에셋금융그룹이 재계 서열 24위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

 

1호 펀드의 성공을 발판으로 '박현주 2호'를 선보일 때도 이들의 사진과 이력이 똑같이 실렸다. 강길환 미래에셋증권 PI부문 대표, 원조 '슈퍼개미'로 이름을 날린 선경래 전 지앤지엔베스트 대표, 구재상 케이클라비스 회장, 김영일 전 한국투자신탁운용 CIO, 이병익 전 오크우드자문 대표이사, 서래호 네이버파이낸셜 책임리더 등. 광고를 장식한 6명의 펀드매니저들은 미래에셋의 초기 도약기를 이끌었고, 이후 회사에 남거나 이직하거나 독립을 해도 이름 석 자만으로 여의도 증권시장을 움직이는 '키맨'이 됐다.

특히, 구재상 케이클라비스 회장은 미래에셋 펀드의 얼굴로 통했다. 창업 이전부터 박현주 회장과 동고동락하며 운명을 같이 했던 3명 중 한명인 그는 미래에셋의 운용을 전담했다. 박현주 펀드부터, 인디펜던스, 디스커버리 등 공모 적립식펀드, 인사이트펀드 전성기 운용 최고 책임자로 활약했다. 그러다 그는 2012년 11월 미래에셋과 아름다운 작별을 한다.

펀드로 큰 미래에셋은 대우증권 인수, 해외 진출로, 국내 독보적인 증권, 운용 중심 금융그룹으로 성장한다. 그 사이 박현주 회장은 대표이사 회장 자리에서 내려와 2018년 4월부터 GSO(글로벌 전략 고문)로 활동 중이다.

자기자본 11조의 미래에셋증권,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이 버는 미래에셋자산운용 등 회사가 커질 때 안살림을 도맡은 이는 최현만 회장이었다. 그는 오너 아닌 최초의 전문경영인 회장으로 국내 금융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자 지난 10월 용퇴를 결정했다.

이제 미래에셋의 창업주역인 박현주회장과 구재상, 최현만의이른바 '애 셋'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조웅기, 최경주 등 초창기 미래에셋 주축들도 이번에 회사를 떠났고, 미래에셋은 완전한 세대교체를 이루고 있다. 창업 멤버들의 이름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에 남았다.

미래에셋 회장이라는 의자에 앉을수 있는 차기 후보군도 지난달 23일 이정호·스와럽 모한티(Swarup Mohanty)·허선호·김미섭·이준용·김재식 등 6명의 신임 부회장 선임을 골자로 한 임원 승진 인사를 통해 꾸려졌다. 눈부신 인도법인 성장을 이뤄낸 스와럽 모한티의 부회장 발탁은 외국인 회장이 나올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이들 6명에 우선 관심이 쏠리지만, 철저한 성과주의인 미래에셋 기업 DNA를 보면 확정은 아니다. 자기 자리에서 끊임없이 성과를 보이면 누구든 미래에셋 회장 의자에 앉을 수 있다는 게 이번 인사를 통해 박현주 회장이 내보인 메시지이다. 나이도 국적도 직급도 박 회장에게는 의미가 없다.

그런 박 회장은 후배들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누구보다 먼저 만들어줬다.흔히들 고문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수렴청정도 미래에셋에서는 없는 일이다. 미래에셋의 선배들은 일찌감치 그렇게 배웠다. 미래에셋 현직 프리미엄이 주는 무게는 남다르다. 경험과 노하우는 공유하지만, 현직의 의사결정을 더 존중하는 것. 미래에셋이 후배들에게 진짜로 '길'을 터주는 방식이다.

사실 국내 자본시장은 '미래 애 셋'의 발전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공모펀드 열풍과 지금의 ETF, 그리고 국경이 사라진 해외 시장까지 미래에셋의 브랜드는 시장에 확실한 이정표를 찍어왔다.

박 회장은 증권과 운용 등 주요 계열사를 중심으로 각각 20~30명 정도의 최고경영자 후보군을 관리한다. 주주는 물론 사내 추천, 기관 투자자, 외부 자문기관 등의 추천을 활용해 자격요건을 검증하고 연간 교육을 진행한다. 이는 다른 금융회사와 비교해 두 배 이상 큰 규모다.

올해부터는 '글로벌 AMP' 프로그램을 통해 본격적인 차세대 리더 육성에 나서기도 했다. 김미섭·이준용·스와럽 모한티 신임 부회장을 비롯한 8명이 선발돼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하버드대학교 등에서 연수를 받았다. 과거 박 회장이 해외에서 공부한 시간 동안 얻은 자산이 시발점이 됐다.

박 회장은 글로벌 AMP 대상자를 그룹 내 부문 대표가 가능한 상무급까지, 이사 직책이 가능한 부장급까지 넓혀 지역도 확대할 계획이다. 조직에 대한 로열티는 현지인과 내국인은 물론 직급과 나이에서도 차이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여느 오너 그룹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미래에셋의 인사는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26년전인 1997년 '미래 애 셋'이 창업을 통해 선사했던 신선함과 파격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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