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그 점에 대해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숫자로만 말한다며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찾기 힘들던 메리츠증권의 최희문 대표이사 부회장은 고개를 숙였다.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금감원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최 부회장은 사모 전환사채(CB) 의혹과 이화전기 사태의 중심에 선 메리츠증권 대표로 여·야 의원들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국감대에 선 그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던 금융투자업계에선 그날의 최 부회장을 두고두고 곱씹었다.

메리츠증권 입장에서도 기업금융(IB) 본부 내 일부 임직원이 직무상 정보를 이용해 사적 이익을 취한 점은 사과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이게 개인의 일탈인가"라고 되묻는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질문은 뼈아팠다. CB 사적투자 적발로 메리츠증권 IB 본부 내 팀 전원이 사직한 탓에 개인의 일탈로만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 메리츠증권은 현금납입과 돌려막기 사이에서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이화전기 사태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위증 논란까지 확산한 이화전기 거래 등과 관련해 금감원은 메리츠증권을 현미경처럼 들여다보고 있고, 검찰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메리츠증권과 13년 동안 메리츠증권을 이끈 최희문 부회장은 지금 최대 위기에 봉착한 게 현실이다.

업계에서는 메리츠증권을 곧 최 부회장으로 본다. '메리츠 = 최희문'이라는 공식은 여의도에서는 여전하다.

 

 

그도 그럴 것이 메리츠증권은 최 부회장이 오기 전과 후로 완연히 달라졌다.

 

올해 3분기 누적 연결기준 메리츠증권의 영업이익은 6천48억원, 당기순이익은 4천790억원이다. 별도기준으로는 각각 4천784억원, 3천246억원이다. 급등한 채권 금리, 침울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쌓아야 할 충당금 등 시장 상황 탓에 작년 동기 대비 줄었음에도, 곡소리 나는 다른 증권사들과 비교하면 여전히 탄탄한 이익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자기자본이익률(ROE)도 무려 10.9%. 커진 덩치에도 역시나 두 자릿수대를 유지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공식적으로 영업이익 기준 '1조 클럽'에 입성했다. 당기순이익 8천281억원, ROE 15.0%, 창사 이래 연간 최대 실적이자 업계 1위의 성적이었다.그야말로 놀랍다.

시간을 13년 전으로 돌려보자.2010년 4월1일. 메리츠종금 합병과 함께 새로 탄생한 당시 메리츠종금증권의 사장으로 최 부회장이 임명되기 전까지만 해도 메리츠증권은 매년 200억원 정도 당기순이익을 올리던 회사에 불과했다. 13년이 흐르고, 순이익은 40배 이상 커졌다.

이런 성장세 뒤에는 철저한 성과주의가 있었다. 메리츠증권의 돌풍을 보면서 업계에선 "차라리 가혹한 성과주의가 낫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성과 뒤에 보상 있다"는 확실한 구호 아래 이를 실적으로 증명한 메리츠증권의 수장, 한동안 '연봉 킹'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던 알렉산더 최, 한국 이름 최희문 사장에게는 운도 따랐다.

최 부회장이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 국내에서는 메리츠종금을 합병, 유일한 종금 라이선스를 바탕으로 신나게 사업할 수 있는 판이 깔렸다. 종금 라이선스를 기반으로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메리츠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극히 최 부회장의 운이었고, 복이었다.

사실 그의 이름값에 비해 개인에 대해 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최 부회장은 취임 후 2012년 사업보고서까지도 대표이사인 자기 이름을 최알렉산더희문이라고 썼다. 그만큼 그는 외국계 느낌이 강했다.

'결근'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결석'으로 처리했다는 에피소드는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여전히 회자하는 에피소드다. 취미를 묻는 말에도 그는 곧잘 "이건 지극한 사생활이어서 대답할 필요가 없다"며 미국식 사고방식에 기댄 '노코멘트'를 던졌다고 한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인 1977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뱅커스트러스트, 크레디트스위스, 골드만삭스 등에서 15년간 근무하다 2002년 삼성증권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2009년 10월 부사장으로 메리츠증권과 인연을 맺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유럽, 미국 등에서 유학한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과의 인연은 서로의 열린 사고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CEO들과 달리 외부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는 자리에 앉아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으로 하루를 채우는 그를, 조 회장은 무한 신뢰했다고 한다.

최 부회장의 칠판에는 매일매일 그날 해결해야 하는 어떤, 어떤 프로젝트가 쓰여있다. 최 부회장 아래의 임원과 직원들은 일찌감치 청바지에 노타이 차림이었다. 2023년에도 마찬가지다. 그는 직원들이 가져오는 프로젝트를 15분의 회의 만에 결정한다고 한다. 그 빠른 의사결정 체계가 지금의 메리츠를 가능하게 했다.

그는 "합병 시너지를 충분히 발휘해 인재들이 누구나 오고 싶어 하는, 명성 있는 금융투자회사로 회사를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취임 당시 말했다.

직원을 로펌 파트너처럼 인식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곧바로 반영됐다. 결국 뱅킹은 사람 장사이기 때문에 로펌 파트너처럼 수익의 절반은 인센티브로 가져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지금은 메리츠만의 문화가 돼버린 성과주의의 시작이었다.

이후 실적에 따라 가져가는 인센티브 구조로 메리츠증권에는 이른바 '선수'들이 모여들었고, 메리츠증권은 기존 증권사들이 보여주지 못하던 수익 창출력을 증명했다.

물론 반감도 적지 않았다. 채권 중심의 영업에 기반을 둔 최 사장이 초기 이른바 '20bp'조차 용납하지 않고, "이런 이런 게 잘못됐으니 알아보라"고 한 것을 두고 시장 플레이어들은 차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인맥, 학맥을 무시하는 건 좋은데, 너무 한국적인 감각을 무시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최희문 부회장은 이제 그것을 본인 색깔로 만든 여의도 증권업계의 '파워 맨'이 됐다.

올해 국감대에 선 최 부회장을 보고 업계에서는 상전벽해를 느낀다고 한다. 이제 최 부회장도 국회의 부름을 받아들일 정도의 정서를 갖게 됐고, 메리츠증권이 마켓 이슈의 중심에 설 정도로 성장했다는 데 새삼 놀랐다고 한다.

최 부회장을 알만한 사람들은 안다. 그가 이번 국감대에 선 마음은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리더로서의 결심임을. 하지만 넥스트 최희문을 찾기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은 너무 많이 남은듯 하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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