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는 어찌 보면 우리에게 '애증'의 관계다.

한때 H지수는 국내 주가연계증권(ELS) 발행시장에서 80%의 기초자산 점유율을 기록할 만큼 투자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해외지수를 기반으로 한 ELS 가운데서도 다우지수, 닛케이지수, 유로스톡스50지수보다 훨씬 더 선호됐던 것은 우상향하는 지수, 그에 따른 꽤 괜찮은 수익률 때문이었다. 운 좋게는 3개월 만에 연 7~8%의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다. H지수가 좀 빠지더라도 다음 조기상환 기회에 예금이자보다 훨씬 높은 수익률을 확정할 수 있고 재투자해 또 돈을 불릴 수 있어 H지수는 국민 재테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좋았던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15년 중순 홍콩H지수가 돌연 급락하면서 대거 손실을 봤던 기억, 2020년 증권사 마진콜 사태까지 일으켰던 홍콩발 ELS 폭탄 기억도 선명하다.

특히 2020년 3월의 기억은 아찔하다. 당시에도 홍콩H지수가 급락하면서 투자자 수익률에 비상이 걸렸는데, 더 큰 문제는 ELS 상품을 자체적으로 운용하던 국내 증권사에 있었다.

당시 해외 금융사들은 20조원 규모의 국내 증권사 자체 운용 ELS와 관련해 일제히 마진콜(추가 보증금 납부)을 요구했다. 마진콜에 대응하기 위해 급하게 달러를 구해야 했던 국내 증권사들은 보유하고 있던 원화 채권과 기업어음(CP)을 내다 팔았다. 여러 국내 증권사의 채권 급매물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오자 시장 금리는 급등했다. 외환시장에서도 달러로 바꾸려는 원화 급매물이 나오면서 원화 값이 급락했다. ELS 상품 하나가 국내 금융시장을 뒤흔들 수 있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목격했고, 비싼 학습효과를 치른 국내 증권사들은 자체 헤지를 줄였다.

미워도 다시 한번. 홍콩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우량 중국 국영기업들로 구성된 홍콩H지수 ELS는 코로나19가 점차 마무리돼가던 2021년 초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당시 홍콩H지수는 12,000을 돌파했고, 장밋빛 중국 경제 전망과 함께 국내 투자자들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았다. 코로나19 시기 미국 연준의 잇따른 금리 인하로 예금금리는 잘 받아야 2%대였다.

ELS는 기초자산으로 하는 특정 주가지수가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면 정해진 금액을 특정 시점에 지급한다. 투자자들은 '설마 H지수가 반토막 나겠어'에 다시 베팅했다. 그런데 실제 반토막이 나버렸다. 오를 것이란 예상과 달리 H지수는 계속 내리막을 걷다 지난해 5,000선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낙인 레벨은 45~65% 정도인데, 가장 낮은 낙인마저 터치해버린 것이다. 사실상 2021년 초에 발행된 ELS 상품 전부가 낙인을 경험했다는 뜻이다.




현재 H지수는 6,000선 초반에 머물고 있는데, 상황이 좀 나은 ELS도 하반기에 돌아온 마지막 조기상환 기회를 날렸다. 이제는 내년 상반기 만기상환만 남아 있다. 5대 시중은행에서 판 물량만 8조4천억원에 달하고, 손실액은 3조원 안팎에 달한다는 예상도 나온다. 라임펀드 피해액의 2배에 육박하는 수치다. 코로나19 위기 시절 돈을 푸는 양적완화에 따른 넘치는 유동성, 유동성이 밀어 올린 전 세계 주식시장, 그 명세서를 홍콩H지수 ELS라는 상품을 통해 받아 들고 있는 셈이다.

손실이 나면 언제나 불완전 판매는 따라붙는다. 과연 손실 가능성, 고위험성을 충분히 알렸느냐가 쟁점으로 떠오른다. 이번 홍콩H지수 ELS는 예금금리보다 더 높으면서도 안정적이라는 점을 적극 내세운 은행권에서 많이 팔렸다. 저금리 시대 조금이라도 이자를 더 받으려는 고령층이 몰렸다. 투자자들은 불완전 판매를 주장하고 있다.

ELS를 판매한 은행, 증권사 전수조사에 들어가는 등 이번 사안들 바라보는 금융감독 당국의 칼날은 매섭다. 아직도 우리 기억에 있는 불완전판매의 시초, 우리파워인컴펀드 사태를 떠올리는 이도 많다. 우리파워인컴펀드는 2005년 11월 분기마다 고정 이자를 지급하는 안정적인 수익상품으로 소개됐다. 실제로는 편입주식 종목이 일정 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막대한 손실이 발생하는 파생상품이었고,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엄청난 원금손실이 발생했다. 이후 판매사들은 불완전 판매를 차단하기 위해 판매시 녹음 등의 장치를 마련한다.

사모펀드 사태 때도 다르지 않았다. 환매가 중단된 다수 사모펀드의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불거지자, 감독당국은 조사에 들어갔다. 이에 부담을 느낀 판매사들이 투자자 손실 일부를 보전해주라는 당국의 권고안을 수용했다. 소송으로 얼룩진 우리파워인컴펀드 등 매우 특이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전례 없는 투자상품에 대한 손실 보전이었다.

이 결정 전후로 최근 몇 년 동안 금융상품의 원금 손실이 발생하면 금융회사가 이를 일부 보전해주는 게 관행으로 자리 잡는다. 자본시장의 흐름을 역행한다는 지적에도 벌써 은행, 증권사들은 H지수 ELS 배상을 해줘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최고경영자(CEO)들의 목 줄을 쥐고 있는 금융당국이 조만간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사태에 대한 최종심을 내린다. 이미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은 CEO들을 조금 더 세게 제재하겠다는 분위기가 짙다.

CEO는 알았을까. 조직의 수장은 책임을 지는 자리지만, 모든 것을 알 수는 없다. 모든 불완전판매 사례를 두 눈 치켜뜨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불완전판매의 책임을 CEO들에게만 묻겠다면, 이미 불완전판매의 배상을 고민하는 금융회사들에는 너무나 가혹하다.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 완전함을 추구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불완전함이 탄생한다. 그 불완전함을 보듬는 과정에서 우리는 조금 더 완전함에 다가갈 수 있다. 배상을 고민하는 금융회사들도, 제재로 시장에 시그널을 주려는 금융당국도, 불완전함을 보듬는 마음이 필요하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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