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월가에도 마켓 무버가 있다. 채권왕, 신채권왕 등등. 오랜 기간 그 자리를 지킨 이는 워런 버핏(Warren Edward Buffett)이다. 2인자이면서도 버핏하면 빠지지 않는 그의 단짝 억만장자 투자자 찰리 멍거(Charles Munger)이 9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28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들에 따르면 버크셔 해서웨이는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 이날 캘리포니아 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버핏은 성명에서 "버크셔 해서웨이는 찰리의 영감, 지혜, 참여가 없었다면 지금의 위치에 세워질 수 없었다"며 애도를 표했다.

버핏과 멍거의 경영으로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는 1965년부터 2021년까지 연평균 20.1%의 상승률을 보여왔다. 이는 S&P500지수의 두 배 수준이다. 멍거 부회장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최대 주주 중 한 명으로 올해 초 기준 자산 규모는 총 25억달러 가량으로 추정된다.

멍거 부회장은 생전에 부동산 변호사이자, 데일리 저널의 발행인 겸 회장, 코스트코 이사회 멤버, 자선가이자 건축가로 활동했다. 50년 이상 버핏 옆에서 그를 보좌해온 멍거 부회장은 캘리포니아 박물관에 지난달에 4천만달러어치의 주식을 기부하는 등 자선과 기부활동도 활발하게 해왔다.

멍거 부회장과 버핏 회장은 7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하며 우정을 쌓았고, 함께 회사를 이끌어왔다. 그리고 버핏의 곁에는 늘 멍거가 있었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매해 열렸던, 축제와도 같았던 버크셔 해서웨이의 연례 주주총회에서 둘은 나란히 앉아 투자자들에게 투자 방식, 투자 철학을 알려왔다.


버핏 회장과 멍거 부회장


2018년 5월의 기억이다. 그해 5월 버크셔해서웨이의 연례주주총회에서 아흔을 바라보는 워런 버핏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반 퇴직 상태가 아니냐"는 질문에 "나는 수십 년간 반(半) 퇴직 상태였다"며 농담 섞인 말투로 받아넘겼다. 그리고 자신이 반 퇴직 상태여도 사실상 달라진 게 없었다고 부연했다.

버핏은 상당 규모의 투자 결정을 다른 경영진에 맡기고 있다고 강조하며 자신의 퇴임 이후에도 버크셔 헤서웨이의 성공이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주주들에게 인식시키려고 노력했다.

버핏과 찰스 멍거 부회장은 이후에도 후계 이슈에 대한 수많은 질문에 답해야 했다. 버핏은 "현재의 명성은 내가 아닌 버크셔해서웨이의 것"이라며 "그 명성이 나와 찰스 멍거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8년만 해도 "우리 회사에는 CEO가 될 만한 사람이 4명"이라던 버핏은 올해 초 그레그 아벨 비보험 부회장, 아지트 자인 보험 부회장을 사실상 유력한 후계자로 낙점했다. 긴 시간을 두고 후계 후보들을 관찰하고 시험해온 버핏은 당시 아벨과 자인을 나란히 승진시키면서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잠시 무대를 한국으로 옮겨 더 오래된 기억 하나를 끄집어 내보자. 2012년 미래에셋 구재상 부회장이 박현주 회장과 결별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펀드업계의 전설인 워런 버핏, 그가 없는 찰스 멍거가 가능했을까. 또는 찰스 멍거의 조력 없이 워런 버핏이 가능했을까.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구재상 없이 박현주가 가능했을까. 또는 박현주 없이 오늘날의 구재상이 가능했을까.

주산 6단과 태권도 4단인 구재상 전 부회장은 남다른 숫자 감각과 체력을 겸비한 인물이다.

1990년대 중반 그는 32살에 최연소 동원증권 압구정동 지점장을 지내고 박현주 회장과 함께 도원결의, 미래에셋 호(號)의 닻을 올렸다. 골방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시장 분석하고 손님들에게 정성을 다하며 미래의 꿈을 꿨다.

그는 평소 술을 마시지 않는다. 후배들은 그의 이런 업무 자세를 군화를 벗지 않고 7년 전쟁을 치른 이순신 장군에 비유한다. 손님 재산을 관리하고 불리는 임무를 맡은 사람이 술기운이 남아 정신이 한치라도 흐트러지면 좋은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신념 때문이다.

대기업 오너들은 구 전 부회장의 겸손을 높게 평가한다. 그가 한때 최대 35조 원을 굴릴 때 5% 이상 지분을 가진 수많은 기업에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지만, 그는 눈 깜짝 않고 엄정중립을 지켰다. 오로지 운용에만 전념했다. 이런 그의 겸손과 중립성 덕분에 지금도 마음으로 교류하는 대기업 오너들이 많다.

찰리 멍거의 타계 소식을 들으니 그의 단짝이던 버핏을 떠올린다. 버핏은 "'당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말하는 파트너가 있다는 건 아주 좋다"고 말할 정도로 멍거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왔다. 동시에 우리나라 자본시장을 꽃 피운 단짝들도 다시 한번 상기해본다. "같은 시대에 살 수 있어서 감사했다" (투자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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