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밖으로 요란하지 않았지만, 안에서는 부산했던 한국금융지주, 특히 핵심 계열사 한국투자증권은 '한투가 한투'했던 2023년으로 기억될 만하다.

자기자본, 개인고객 금융상품 잔고 등 숫자는 물론, 오너 2세의 뚜렷한 존재감과 외부영입 인재의 최고경영자(CEO) 발탁 등 비(非)숫자에서도 한투의 변화는 뚜렷했다. '파격'도 '급격'도 없었지만, 그 안에서 한투만의 색깔이 드러났다.

한투증권은 국내 두 번째 자기자본 8조원의 '메가 증권사'가 됐다. 올해 9월 말 기준 자기자본은 8조2천569억원. 금융당국의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 정책으로 탄생한 최초 미래에셋증권 이후 6년 만이다. '히든카드' 카카오뱅크 지분 인수를 통해 지난해 말 6조5천528억원이던 자기자본을 9개월 만에 2조원 가까이 늘리는 데 성공했다.

또 삼성이라는 대기업 브랜드 없이도 개인 고객 금융상품 잔고 50조원 돌파를 이뤄냈다. '채린이'라 불리는 초보 투자자들의 채권투자 열풍, 발행어음 등 한투증권만의 강점을 살린 상품이 잘 팔린 덕에 1년 만에 12조 늘었다.

사실 은행과 달리 증권사 개인 고객들은 브랜드에 민감하다. 아예 수수료 강점을 내세운 키움으로 가지 않는다면 큰돈을 맡기려면 삼성이라는 대기업 브랜드, 리딩 뱅크인 은행과 연계성이 많은 계열 KB나 신한을 찾는다. 증권 기반의 한투증권이 유리할 리 없다.

'한투호' 선장인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은 숫자로 증명함과 동시에 다음 세대를 위한 내부 정비에도 적극적이었다.

지난 7월 한투증권은 200억엔(약 1천845억원) 규모의 사무라이채권 발행에 성공했다. 국내 최초로, 달러 외 외화 채권을 발행한 유일한 증권사가 됐다. 사무라이채권은 일본 채권시장에서 외국 기업이나 정부가 발행하는 엔화 표시 채권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셔틀 외교 복원 등으로 한·일 관계 해빙 분위기가 조성됐던 당시는 일본에서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엔화 표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을 발행 계획이 나오던 때이기도 했다. 한투증권의 사무라이채권은 이런 명분과 올해 계속된 엔저와 저금리 등 실리를 모두 챙긴 조달로 평가된다.

한투증권이 얻은 건 이뿐만이 아니다. 김남구 회장의 장남 김동윤씨가 직접 일본으로 가 사무라이채권 PT에 나섰다. 경영자 수업 중인 장남의 첫 성공 사례로, 김 회장이 매우 뿌듯해했다는 전언이다. 김동윤씨는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지점 영업을 거쳐 IB, 경영전략 부분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그는 올해 한국금융지주 지분을 처음으로 매입해 화제가 됐다.




김남구 회장은 내부 세대교체도 단행했다. 신임 대표이사(사장)로 김성환 개인고객그룹장(부사장)을 승진 임명했는데, 내부, 외부를 가리지 않은 철저한 성과주의 인사였다.

김 사장은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을 일궈낸 'PF 1세대'다. 1994년 교보생명으로 금융권에 첫발을 디딘 뒤 보험사 최초로 PF를 도입했고 2001년 LG투자증권으로 증권업계에 들어온다. 2004년 동원증권에 합류해 국내 증권사 최초로 PF 전담 부서를 설립한 것도 그다.

'국내 PF 시장의 아버지'인 그는 2007년 부동산금융센터장(상무보)으로 승진, 최연소 상무 타이틀을 거머쥐었고, 이후 부동산금융담당 본부장을 거쳐 2016년 IB그룹장까지 승승장구했다. '거의 IB만 해본 IB 전문가가 리테일 등에서는 약할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를 불식하고 개인고객그룹장으로도 최대 성과를 냈다.

PF 본부장으로 있을 때 그는 천수답으로 불리는 브로커리지, 리테일 중심 영업에서 탈피해 증권사가 부동산금융 사업까지 수익구조를 확대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했다. PF의 기초가 되는 ABS(자산유동화증권),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도 도입했다. IB그룹장 당시 IPO 주관 1위를 기록했고, 경영기획총괄 때는 초대형 IB 지정, 발행어음 인가취득을 주도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채권 운용도 해봤다. 걸어온 길을 볼 때 그는 '잘 준비된 CEO'다.

김남구 회장은 첫 수석부회장 체제도 도입했다. 수석 부회장으로 승진한 유상호 부회장은 국내는 물론 해외사업에도 전력을 다한다. 인도네시아 등으로 밑그림을 완성한 한투증권은 이제 본격적인 글로벌사업 그림을 그린다. 부동산금융을 통해 글로벌 감각을 익힌 김성환 사장, 부사장으로 승진한 송상엽 글로벌사업본부장을 전진 배치한 것도 유 수석 부회장의 글로벌 행보에 힘을 실어주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이런 숨 가쁜 변화 속에서도 한투증권은 조용했다. 미래에셋처럼 2기 전문경영인 체제, 의자론을 내건 떠들썩함은 없었다. 이는 한투의 기업 문화다. 동원참치라는 제조업 기반의 재벌가 장남이 불모지였던 증권업에서 업계 톱티어가 되기까지, 김 회장은 덤덤하게 이 길을 걸어왔다. 한국투자증권은 배 한척으로 증권사를 산 김재철 동원그룹 명예회장의 DNA를 이어받아 2004년 '다윗' 동원증권이 '골리앗'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해서 탄생한 회사다. 현 사명이 한국투자증권이 된 것만 봐도 배보다 배꼽이 큰 인수 사례였음을 알 수 있다.

전신인 한신증권은 국내 대표 증권사였다. 1981년 6월 시중은행의 민영화에 따라 삼보증권, 동양증권과 함께 매물로 나온 한신증권의 예상 낙찰 가격은 70억원대였다. "70억원이 넘는 북양 트롤선이나 참치 선망선 한 척 구입하는 셈 치고 증권회사를 하나 구입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김재철 명예회장의 생각에서 출발했다. 공모선이나 선망선의 어선도 고가인 경우에는 70억원을 웃돌던 때였다. 김 명예회장은 한신증권 인수가로 71억1천200만원을 썼다.

그때의 70억 원은 2023년 오늘 8조 원이 넘는 자산이 됐다. 그리고 제조업이 아닌 여의도 한복판에서 내로라하는 오너가의 명맥을 이어가는, 아니 확장하는 발판이 됐다. 한투같은 한투, 그래서 내년이 더 기대되는 한투다.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14시 18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