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나는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유일한 부고 전문기자로 일하면서 유명한 사람, 유명했어야 하는 사람, 악명 높은 사람, 주목받았어야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해 지금껏 800여 명의 인생 이야기를 썼다"

제임스 R. 해거티는 40년 넘는 세월 동안 월저널을 지키면서 '자신의 부고를 쓰는 어느 부고 작가'라는 기사로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이야기는 책으로도 출간됐다.




부고 전문기자. 종합지도 아닌 경제지 월저널의 부고 전문기자라는 단어 자체가 신선하다.

"누구도 나보다 내 부고를 잘 쓸 순 없다" "부고마저 재미없다면 죽는 데 무슨 낙이 있을까?"라고 묻는 해거티는 질문에서 삶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된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죽는다. 계절이 바뀌는 9~10월, 1~2월에 부고는 더 많다. 이를 알리는 한국의 부고에는 표준 형식이 있다. 이름과 가족, 날짜, 발인, 더해서는 장지까지, 틀에 박힌 글이다.

거기서 상을 치르는 후손들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의 부고는 꽤 쓸만한 정보가 된다. 발인 전 상가로 발걸음을 옮기게 하는 부고, 경제파트에서 부고는 다른 이유로 열독률이 높다.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서도 나온다. 큰형은 동생에게 얘기한다. "동훈아 너, 어떻게든 회사에 꼭 붙어있어야 한다. 엄마 돌아가시기 전까진, 불쌍한 우리 엄마 장례식장에 화환이라도 제대로 박혀 있고, 쪽팔리지 않게 문상객 채우려면 어떻게든 회사에 붙어 있어야 해. 회사에서 잘리는 순간 너, 바로 나 된다"

막 기자를 시작했을 때 동정과 부고를 챙기면 에이스 기자가 된다고 했다. 상가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모여들고 취잿거리 하나라도 들을 수 있는 장소였다.

해거티는 1%에 해당하는 유명인, 나머지 평범한 99%의 인생 이야기가 다른 방식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유명인의 경우 전문기자들이 그들의 삶을 몇 문장으로 요약해 부고를 쓴다. 99%는 슬픔 속에서 장례 문제를 급하게 처리하느라 정신이 혼미해진 가족이나 친구의 손에 급조될 가능성이 크다.

언론의 부고란에 등장할 정도면 1%에 해당하는 유명인이 압도적으로 많다.

한국의 부고에 망자의 이야기는 다뤄지지 않는다. 추모에 인색한 한국의 문화가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 상가에서 오가는 지인들의 덕담 외에 망자에 대해 얘기하는 것 자체가 실례일 수 있다.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당사자가 아닌데 공개적으로 기사화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 금융사에 한 획을 그었어도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것에 대해 불편해한다.

따뜻했던 완벽주의자 최용호 금융위 단장을 기억한다. 우리는 재경부 은행과 사무관 시절부터 일로서 살아왔던 얘기를 담는데 충실하고자 했다. 부고 몇 줄로 담을 수 없는 그의 삶의 궤적과 금융위가 육성한 몇 안 되는 소중한 자산으로 우리는 그를 기억하고 싶다.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이종우 센터장도 그렇다. 그는 영원한 이코노미스트이자, 우리의 닥터둠이었다.

2024년은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오는 윤년이다. 태양을 도는 지구의 공전을 계산해 만든 양력에서 오차를 줄이기 위해 4년의 주기마다 365일에서 하루를 더해 1년을 366일로 만드는데, 그 1년이 윤년이다.

지구 공전을 기준으로 1년의 길이는 365.2422일이다. 1년을 365일로 정한 상황에서 이 0.2422날의 오차가 생긴다. 4년마다 2월29일로 그 오차를 보정해 나간다. 2월29일은 윤일로 불린다.

윤달, 윤년은 장례 마케팅 포인트이기도 하다. 4년 뒤로 기약해야 할 2월 29일, 차가운 죽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부고, 특히 언론의 부고에 대해 고민해 본다. 새해 들어서도 많은 부고를 접했다. 그렇게 인생은 이야기가 된다고 하지 않나. (투자금융부장)

sykwak@yna.co.kr

(끝)

본 기사는 인포맥스 금융정보 단말기에서 09시 11분에 서비스된 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