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정지서 기자 = 글로벌 금융위기가 들이닥친 지난 2008년, 또 하나의 재앙이었던 '메이도프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메이도프의 사기 행각을 감지한 몇몇 미국 헤지펀드 시장 전문가들이 휘슬블로어를 자처했지만, 미국 금융당국이 이들의 의견을 무시한 탓에 다단계 폰지 사기인 메이도프 사태는 세계적으로 650억달러의 손실을 끼쳤다.

미국계 헤지펀드 운용사 '벤치마크플러스(Benchmark plus)'도 끊임없이 메이도프의 부당함을 고발한 휘슬블로어 중 하나였다.

로버트 퍼거슨 벤치마크플러스 대표는 22일 연합인포맥스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메이도프 사태는 헤지펀드의 리스크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척도"라며 "금융위기와 메이도프 사태 이후 헤지펀드들도 자정 적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벤치마크플러스는 메이도프 사태가 발생하기 6년 전인 2002년, 처음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메이도프 펀드의 행각이 의심스럽다고 고발했다.

하지만, 소규모 헤지펀드에 불과했던 벤치마크플러스의 6번에 걸친 고발을 SEC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리고 6년 뒤, 이 펀드를 운용해온 버나드 메이도프는 150년형을 선고받으며 대표적인 다단계 금융사기꾼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퍼거슨 대표는 "회사 리서치 헤드를 담당한 닐 첼로가 메이도프의 사기 행각을 처음 발견하고 자체 리스크 시스템으로 이들의 자금 운용을 살펴봤는데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며 "대마불사로 여겨진 메이도프를 우리를 비롯한 일부 헤지펀드 말고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헤지펀드는 리스크를 이용해 투자 기회를 포착해야 하는 만큼 철저한 리스크 관리 없이는 자금 운용이 불가능하다"며 "펀드의 수익률도 리스크 관리에서 나온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벤치마크플러스는 지난 1998년 퍼거슨 대표가 스콧 프란즈블라우와 함께 창립한 소규모 헤지펀드 운용사다. 자신들과 지인들의 자금 일부를 모아 1백만 달러 수준에서 시작한 이 펀드는 현재 운용규모(AUM) 2조달러가 넘는다.

15년 새 운용 규모가 2천 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퍼거슨 대표는 "리스크는 또 다른 이름의 기회지만 그만큼 기회비용이 필요한 일"이라며 "리스크 관리 중요성을 안 헤지펀드들이 진화하고 있고, 그들 중 우리도 하나"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퍼거슨 대표와의 일문일답.

--한국 방문이 처음인가. 이번 방한의 목적이 있다면.

▲이미 4~5번 방문했다. 한국에 있는 기관 투자자들을 만나고 한국 시장을 좀 더 가까이 보려고 찾았다. 이미 만나본 기관 투자자들도 40여 곳이나 된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헤지펀드 산업에 대한 세미나도 열었다.

--업력 15년의 중견 헤지펀드가 보기에 이제 1년 된 한국의 헤지펀드 시장은 어떤가.

▲다이내믹한 마켓이다. 아직 1년 된 시장의 산업을 평가하긴 이르지만, 성장성이 놀라운 것은 사실이다. 미국과 영국 등 금융 선진국들의 초기 시장과 비교했을 때 성장 속도가 매우 빠르다. 그만큼 잠재된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한국 시장에 진출할 생각도 있나.

▲아직 결정된 게 없다.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일단 한국의 기관투자자들의 많이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이다.

--벤치마크 플러스라는 사명은 '시중금리+알파(α)'의 수익률을 추구한다는 뜻인가. 회사를 소개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알파(α)는 회사의 투자 철학으로 단순히 초과 수익을 뜻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특정 벤치마크를 좇지 않는다. 펀드오브펀드 회사인만큼 우리 매니저들은 각각이 추구하는 벤치마크를 만들어 펀드를 운용한다. 우리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매니저의 기술이다. 변동성이 큰 시장 상황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각각의 포트폴리오를 운용한다는 뜻이다.

--시장의 모든 변동성을 헤지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우리가 운용하는 펀드들은 시장 상황과 전혀 관계없이 시장의 방향성을 헤지하는 게 골자다. 방향성에 대한 요소를 헤지해 매니저들만의 알고리즘으로 투자하는 셈이다. 헤지펀드 수익률을 결정하는 요소는 시장 상황과 매니저 스킬, 이렇게 두 가지다. 하지만, 시장에 상관된 수익률은 변동성이 크다. 그래서 시장 위험에 대한 헤지 후 매니저 기술에 대한 수익률만 추구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알파는 바로 매니저 능력에 따른 순수한 수익률이다. 이른바 '퓨어 알파펀드'다. 그러다 보니 능력 있는 매니저가 많고 이들의 위험 회피 능력이 뛰어나다. 메이도프 사태를 처음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결국 '매니저=수익률'이라는 말로 들리는데.

▲한국 시장만 해도 북한을 둘러싼 정치적 리스크, 엔저 등 환 리스크 등 시장 변동성이 크다. 그 모든 변동성을 우리가 미리 알아낼 수는 없다. 다만, 그러한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그 위험을 어떻게 관리하고 기회로 활용할 것인가가 문제다. 그걸 결정하는 게 매니저의 역량이다.

--지난 1998년 회사를 설립한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는 언제였나.

▲모두가 어려웠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최고의 성과도 그때 기록했다. 우리가 운용하던 펀드 중 하나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2%의 수익률을 올렸다. 현재 운용자금의 95%가 정부, 대학 등 연기금을 앞세운 기관 투자자들이다. 이 시기에 기관 투자자 비중도 크게 늘었다. 금융위기가 시장 가격을 흔들면서 우리에겐 기회가 된 셈이다. 리스크 관리가 되어 있는 회사들엔 결국 위기는 또 하나의 기회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헤지펀드 시장에 준 변화가 있다면.

▲자정작용을 앞세운 진화다. 지금도 헤지펀드들은 진화하고 있다. 시장 방향성을 헤지해 순수한 알파를 좇는 우리 같은 펀드오브펀드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진화의 과정이다.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이 두드러지다 보니 헤지펀드 스스로 투명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의 헤지펀드들은 아직까진 전통적인 스킴으로 운용되지만 성장할수록 스스로 진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리라 본다. 벤치마크플러스 역시 앞으로도 꾸준히 진화하는 회사가 되고 싶다.

jsje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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