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태문영 기자 = 그리스 주요 도시인 테베에서 수도 아테네로 진입하는 간선도로. 자동차 한 대가 톨게이트로 진입하자 차단기가 내려온다. 그러나 운전자는 통행요금을 낼 생각도 않고 창밖으로 손을 뻗어 차단기를 들어 올린 후 지나가버린다.

그리스 정부가 더 많은 세금을 걷으려고 톨게이트를 설치한 데 대해 그리스인들이 대항하는 방식이다.

그리스에 닥친 재정 위기로 국민의 삶은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리스는 5년째 경기 침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것으로도 모자라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일자리 감축과 연금 삭감, 임금 삭감을 단행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그리스 정부가 다른 나라의 정부나 다른 나라의 은행들과 한 약속으로 그리스 국민은 고통받고 있다.

현재 그리스 국민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실업률은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20.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4세 이하 실업률은 48%로 전년동기의 35.6%에서 급등했다. 그리스 젊은이 중 절반이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에 젊은이들의 이탈이 가속하고 있다. 의대나 교대, 공대 등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외국으로 떠나고 있다. 경제 구조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에 큰 구멍이 생기는 것이다.

자살률은 지난해 상반기 40%나 치솟았다.

2009년 이후 그리스 기업 중 1/4이 파산했고 중소기업 중 절반은 임금 지급을 못 하는 상황이다.

한 그리스 유력 진보언론은 직원들에게 4개월째 월급을 주지 못했다.

회사는 이미 파산신청을 했고 신문을 전혀 발행하지 못하는데도 달리 갈 곳이 없는 직원들은 회사에 남아있다.

그리스 은행가들은 고객들이 예금 중 1/3 정도를 찾아갔으며 많은 경우 그 돈을 침대 밑이나 마당에 숨겨놓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은행가는 요즘 자신의 업무가 고객들이 예금을 인출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일이라면서 "누가 그리스 은행을 믿겠느냐"고 반문했다.

금융체계가 제 기능을 못하자 대신 물물교환이 활성화됐다.

또 작년 9월 열린 정부 후원 호주 이민 설명회에는 1만2천명이나 몰려들었다. 한해 전에는 불과 42명이 참가했었다.

멀쩡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그리스가 나치 치하에서 고통받던 당시 굶주렸던 그리스인들의 요리법을 기록한 책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르는 씁쓸한 일도 있었다.

그리스 경제 곳곳에서는 상황이 급변한다는 신호가 포착된다.

그리스 최대 항구인 피레우스항만의 운영권은 중국 최대 해운업체 코스코가 가지고 있다. 지난 2009년 말 지분을 매입한 중국은 피레우스항을 남동 유럽행(行) 수출품 운송의 거점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카타르는 그리스 관광 인프라 건설 등 다수 프로젝트에 총 50억달러 투자하려고 검토 중이다.

상대적으로 사정이 나은 유럽 강국들은 그리스의 섬들을 부유한 은퇴자들의 값비싼 '실버타운'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건설업체에서 10년 동안 현장감독으로 일해온 한 56세 남성은 정년을 2년 앞두고 지난해 9월 해고됐다.

그는 그럼에도 재정 긴축이 "여전히 위기를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장근로자였던 한 여성은 "그리스식 생활방식은 소비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라며 재정 긴축이 필요하다는 데 동의했다.

myt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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