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백웅기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핵 문제에 대해 강경한 조치에 나설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재부상했다. 서울외환시장은 위험 회피(리스크오프) 분위기가 완연한 모습이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10일 "국내 증시에서 주가가 빠지는 반면 역외에서 달러화를 매입하는 상황이 전형적인 리스크오프 장세로 볼 수 있다"며 "북한에 대한 미국의 행동을 모두가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주 시리아에 대해 미사일 공습을 감행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주창해왔던 고립주의 외교 노선에서 벗어났다.

시리아 공습은 북핵 문제가 핵심 의제로 거론됐던 중국과의 정상회담 중에 이뤄져 북한 문제에 대한 미국 측의 의중을 암묵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풀이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회담 이후 양국 정상의 공동 성명이나 공동 기자회견 자리가 없었던 것을 두고 북한 문제 관련 이견을 보인 탓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정상회담 직후 항공모함 칼빈슨호의 항로를 한반도 쪽으로 돌려놓으며 북한의 도발 행위에 강경한 대응을 경고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미·중 정상회담 결과를 브리핑하며 북핵 문제와 관련 중국과의 협력이 어렵다는 판단이 설 경우 "독자적인 방도를 마련하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회담에 앞서 "중국이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할 것"이라고 말했던 입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이에 북한과 거래한 중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나 국내 전술핵무기 재배치, 선제 대북 군사행동 등이 미국 독자적 행동의 선택지로 거론되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 내부적으로 이번 달 각종 기념일이 많은 가운데 도발 가능성도 그 어느 때보다 큰 것으로 전해졌다.

오는 15일은 김일성 주석의 105주년 생일로 이른 바 '태양절'이라고 칭하며 민족 최대 명절로 삼는 날이다. 9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추대 기념일, 13일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당 최고직 제1비서에 오른 지 5주년 되는 날이다.

그 밖에도 21일은 김일성 생모이자 김정은 증조할머니인 강반석의 생일, 25일은 북한군의 85주년 '건군절'이다.

당장 다음날은 북한 최고인민회의가 열려 새로운 대외노선 관련 메시지가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북한은 김정은 정권 출범 직후인 2012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임을 천명한 적이 있다.

미국이 항모 전단을 한반도 해안에 배치한 것은 이처럼 북한이 주요 이벤트를 앞두고 핵실험 등 도발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뜻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시리아 공습에서처럼 트럼프 행정부는 특별한 예고 없이 행동하는 성향이 강해 불안감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중국 주요 언론도 그런 측면에서 미국이 선제공격에 나설 경우 대규모 확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한 외국계 은행 딜러는 "한동안 북한 리스크에 둔감했던 상황과는 딴판인 분위기인 것만은 확실하다"며 "그렇다고 전쟁으로 비화할 것으로 보진 않지만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을 얘기하는 것일 뿐이고 시장의 불안 심리는 당분간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 간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100일 계획 합의 소식에 환율조작국 지정 가능성이 줄었다는 해석까지 더해져 이날 달러-원 환율은 훌쩍 1,140원대로 뛰어올랐다.

다만, 극단적인 상황까지 가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최근 가파른 달러화 상승세가 주 후반에 앞서 진정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정성윤 현대선물 연구원은 "미·중 정상회담 결과의 연장 선상에서 볼 때 일단 중국에 큰 충격 없이 지나갔다"며 "이후 중국 당국이 위안화 추가 약세 시 적극적으로 안정 조치에 나서는 모습이 보인다면 신흥국 리스크도 상당히 완화돼 현재 상황도 다소 가라앉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140원대 중반은 크리티컬한 레벨이라 오늘 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연준 자산 축소 관련 발언이나 주 후반에 발표될 중국과 미국의 물가지표를 경계하는 거래 패턴도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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