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두산그룹의 '사회적 부채'
[데스크 칼럼] 두산그룹의 '사회적 부채'
  • 고유권 기자
  • 승인 2020.06.1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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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인포맥스) '한 말 한 말 차근차근 쌓아 올려 산같이 키우겠다'. 박승직은 1896년 종로 4가에 '박승직 상점'을 연다. 아들 박두병은 1946년 경영권을 물려받으면서 상호를 '두산(斗山)'으로 바꾼다. 현재의 두산그룹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한 달 보름만 있으면 두산은 창립 124주년을 맞는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박두병의 의지처럼 두산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해 산 같은 기업이 됐다.

두산이란 기업과 인연을 맺고 취재하고 기사를 쓴 지 벌써 12년이 넘었다. 기자의 눈으로 수많은 대한민국 기업들을 봐왔지만, 두산만큼 다이내믹한 곳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두산이 또 위기다. 하지만 오랜 기간 두산을 지켜봐 온 입장에서 사실 새로운 일은 아니다. 부침의 차원이 여느 기업과 달랐을 뿐 두산에 위기는 늘 반복적이었다. 망할 것 같았지만 결국 또 살아남았다.

1991년 구미공단에 있던 두산전자에서 페놀 30t이 낙동강에 방류됐다. 두산은 단번에 식수를 오염시킨 부도덕한 기업으로 낙인찍혔다. 두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이틈을 타 하이트맥주는 '깨끗한 물'로 맥주를 만든다는 광고를 내보냈다. 급기야 '1등' OB맥주는 막대한 타격을 입는다. 재무 상황은 악화했다. 두산은 그룹 존립을 고민해야 할 상황까지 내몰렸다. 창립 100주년을 앞둔 1995년 두산은 강력한 구조조정에 돌입한다. 결국 그룹의 전부와도 같았던 OB맥주를 팔았다.

소비재 사업 중심이던 두산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사업구조를 완전히 바꾼다. 두산의 공격적인 인수·합병(M&A) 역사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2001년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인수하고, 2003년 고려산업개발(현 두산건설), 2005년 두산종합기계(현 두산인프라코어)를 사들인다. 2006년에는 종가집 김치를 팔았고, 2008년에는 소주 '처음처럼'을 롯데에 매각한다. 사업구조를 소비재에서 발전설비·기계·중장비 분야 등 인프라구축 지원사업(ISB)으로 완전히 바꿨다. 사업구조의 획기적인 탈바꿈과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발판삼아 공격적인 M&A는 계속한다. 보일러와 터빈, 발전기 등의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영국의 미쓰이 밥콕과 체코의 스코다파워 등을 또 사들였다. '두산'이라는 상호의 뜻에 맞게 성장을 구가하던 때였다.

하지만 대대적인 사업구조 재편 과정에서 공격적으로 진행한 M&A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게 독(毒)이 됐다. 글로벌 건설경기의 변동과 에너지 정책의 대대적인 변화도 두산에 엄청난 리스크가 됐다. 사실상 ISB에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를 몰방하다시피 하면서 새로운 위기는 항상 재무적인 문제로 연결됐다. 두산건설의 대규모 미분양 사태가 그랬고, 밥캣 인수를 위해 빌려온 수조 원의 돈을 해결하는 문제도 두산을 휘청이게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할 뿐 현재의 두산중공업 위기에 못지않은 위기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인 2009년 이후 두산에 위기는 상시적이었다. 지금은 그룹 지배구조의 사실상 최상단에 있는 두산중공업이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게 다를 뿐이다.

사실 두산이 또다시 살아남을 것인지 장담할 수 없다. 그런데도 기대해 보는 것은 두산이 그간 보여온 신속성과 과감성, 시장과의 소통 능력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오른팔, 왼팔도 모두 잘라낼 수 있다는 점을 두산은 보여줘 왔다. 내부에서 결정하면 신속하게 원매자들을 찾아 협상했고, 순식간에 알짜 기업들도 팔아 자금을 확보했다. 문턱이 닳도록 은행을 찾아가 자금 문제를 협의하고 도움을 청했다. 은행들이 바라는 매우 높은 수준의 요구도 맞춰줬다. 회사채 시장 참가자들을 모아놓고 유동성 어려움에 대해 가감 없이 설명하고,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도 솔직히 알렸다. 투자은행(IB) 업계 참가자들과 시장에서 원활하게 소화될 수 있는 새로운 딜 구조를 짜냈다. 사업은 중후장대였지만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은 금융전문가들 못지않았다.

두산은 두산중공업에서 비롯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올해 안에 3조원의 자금을 확보하겠다고 한다. 벌써 알짜 기업들에 대한 매각을 진행 중이다. 구체적인 진행 상황이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두산은 딜을 진행할 때 늘 그래왔다. 결과만 보여줬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이 석 달 동안 두산에 빌려준 돈만 3조6천억원이다. 현재 진행 중인 자산과 계열사 매각을 통해 목표로 한 3조원을 마련하고, 두산중공업에 1조원 규모의 자본을 확충해 줌으로써 위기를 벗어나야 한다. 영업력을 회복하고 돈을 벌어 채권단이 빌려준 돈도 갚아야 한다.

두산 총수인 박정원 회장은 지난 11일 그룹 전 직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정부의 관심과 채권단의 지원에 힘입어 두산중공업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기반은 마련됐다"면서 "관심과 지원이 단순한 금전적 부채를 넘어 사회적 부채를 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의 말처럼 그간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두산이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산은과 수은 등 국책은행이 측면에서 지원해 준 덕이 크다.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시장 속에 들어갈 수 있는 '특별 티켓'을 발급해 준 것도 국책은행들이었다. 기업들에 위기는 결국 돈의 문제다. 기업의 혈관 속에 누가 돈을 수혈해 주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지금은 국민의 세금이 두산의 혈관에 들어가 있다. 두산이 현 상황을 허투루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사회적 부채'를 언급한 박 회장의 말이 허언이 아니길 바란다. 유동성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영정상화에 성공하는 날 두산은 국민들에 머리 숙여 깊은 감사를 표해야 한다. 그것이 도리이자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길이다.

(기업금융부장 고유권)

pisces73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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