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정책 한계에 다다른 건 아닐지 의문이 생길 즈음, 제롬 파월 의장은 '연준 풋'이 건재함을 보란 듯이 증명했다.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은 아주 먼 이야기고 지금은 더 할 일이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고, 전격적으로 개별 회사채 매입이라는 정책 카드를 꺼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유행 우려에 폭락 조짐을 보이던 시장은 다시 반등했고, 연준은 이번에도 시장을 구해냈다.

팬데믹 초기, 연준은 손이 뻗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전례 없는 속도와 규모의 정책을 쏟아냈다. 연준이 목표로 했던 원활한 시장 기능과 안정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워낙 골이 깊었던 데다, 실탄을 거의 모두 쏟아부어 위기 이후 초기 회복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었다. 모든 것은 연준으로 통하고, 연준과 싸우지 말라는 격언이 재확인됐다.

연준의 고민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최악이 지나간 것 아니냐는 안도가 나오는 상황에서 섣부른 기대는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는 부분을 강조하면 당연히 시장은 테이퍼링과 금리 인상 시기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시장이 흔들리고 금융 여건이 위축될 수 있다.

또 3~4월과 같은 극심한 혼란도 당연히 피해가야 한다. 다시 위기가 와도 연준에 기대할 게 많지 않다는 시장의 회의적인 시각도 걷어내야 한다.

파월 의장은 시장의 경제 회복 기대를 낮추고, 연준은 아직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다는 점을 돌려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수위가 센 직접 화법을 택했다. 파월 의장 특유의 솔직하게 말하는 화법(plain-spoken communicator)이 다시 한번 드러난 셈이다.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기자회견에서 파월 의장은 "우리는 금리를 인상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있고, 금리 인상을 생각하는 것조차 생각하지 않고 있다"(We're not thinking about raising rates, we're not even thinking about thinking about raising rates)고 말했다.

연준은 예상대로 금리를 동결했다. 2022년까지의 연준 위원 각각이 예상하는 금리 전망을 보여주는 점도표에서 2개를 제외한 모든 점은 금리 하한, 여전히 제로 금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파월 의장은 점도표에서 더 나아가 시장에 확신을 줬다. 그동안 점도표는 그냥 점일 뿐이고, 성명서에 더 주목해야 한다며 점도표에 쏠리는 너무 많은 관심을 경계했던 파월 의장이 점도표에 더 힘을 실어준 것이다. 월가에서는 역대 연준 의장으로부터 나온 말 중 가장 비둘기파적인 표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여기에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걱정 없이 매우 낮은 실업률을 견딜 준비가 돼 있고 이를 반긴다고 말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펀치볼을 치우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사실 이번 위기에서 파월 의장이 가장 반복적으로 사용한 시그니처 표현은 "계속해서 강력하고 공격적이며 선제적으로 우리의 힘을 쓸 것"(We will continue to use our powers forcefully. aggressively and proactively)이다. 연준의 전반적인 기조를 강조한 표현이자, 성명서보다 더 강력한 표현 중 하나다.

파월 의장은 양적완화(QE) 속도도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적어도 지금 수준에서 내려가지 않겠다는 하한을 제시하는 방법을 택했다. 연준은 3월 이후 하루 3천억 달러에서 40억 달러로 국채 매입 규모를 줄였다. 3차 QE보다 현저히 큰 현 QE 규모를 당분간 이어가겠다는 일종의 보증을 통해 테이퍼링 가능성을 배제했다. 하한 설정으로 향후 규모와 구성 비율을 조정할 수 있는 추가 정책 가능성을 열어뒀다. 부드러운 QE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익률 곡선 제어 등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열린 질문"이라며 가능성을 열어뒀고, 5월 고용이 바닥을 찍었다는 일부 시각에 대해 "단일 경제 지표에 과잉반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치를 낮추는 등 너무 비둘기파적인 기조는 피하려고 애썼다.

그리고 16일, 연준은 개별 회사채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3월 20일 이전까지 정크등급이 아니었던 회사채를 포함해 기존 회사채는 물론 신규 발행물도 연준이 사게 된다. 사실 3월에 발표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 사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단지 상장지수펀드(ETF)로만 사던 것을 더 폭을 넓혀 더 공격적으로, 더 유연하게 사겠다는 뜻이었다. 그런데도 시장은 연준의 또 다른 구제로 받아들였고, 주식 초보 개인투자자인 미국의 주린이들은 '연준 매수'라는 말을 듣고 시장을 가득 채웠다.

이후 파월 의장은 시장 개입으로 가격을 왜곡시키지 않겠다는 의미로 채권시장을 망치는 "코끼리처럼 행동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투자자들에게 개별 회사채 매입은 연준 풋의 연장으로 여전히 읽히고 있다.

코로나19 위기는 '슈퍼맨 파월', '파월의 시대'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사상 최장의 미국 경제 확장기 속에서 부임한 파월 의장에 대해 임기 초기만 해도 '파월의 화법이 위험을 가져온다'며 오럴 리스크를 지적하던 월가는 달라졌다. 아직 위기가 끝난 게 아닌 만큼, 파월 의장은 정책은 물론 의사소통에서도 강약을 잘 조절해야 하는 중책을 짊어지고 있다. (곽세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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