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소진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기금이 소진되면 국민연금을 받지 못한다는 말도 이제 더 이상 크게 나오지 않는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사회보장제도로서 연금의 지급이 당연시되는 것이다.

그 대신 요즈음 국민연금 기금이 세대 간 형평성을 악화시키게 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인구 구조상 연금을 받아 가는 퇴직계층이 젊은이들의 부담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연금제도가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의 부담과 혜택을 양분하는 것은 아니다. 혜택으로 생각되는 수급자들은 이전 보험료를 부담했던 사람들이고, 현재 부담하는 근로자들 역시 미래 수급자가 된다. 문제는 부담과 수급의 비율이 소진 이후 세대들에게 매우 불리하다는 것에 대한 주장이다. 하지만 연금제도가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할 때 유·불리함을 세대별로 분리하여 구분할 수 있을까.

세대 간 협력과 관련하여 연금제도를 설명하는데 우화 '개미와 베짱이'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 누구나 이야기를 알기에 개요는 생략하겠다. 단지 현실 세계에서 연금이 없다면 손해 보는 것은 베짱이가 아니라 개미다. 우화에서는 여름내 놀고먹던 베짱이가 겨울이 되면 얼어 죽지만, 현실은 여름 내내 열심히 일한 개미에게서 삥을 뜯어서라도 베짱이가 죽지 않도록 도와줄 수밖에 없다. 그게 국가니까. 불공평함을 없애려면 베짱이에게도 여름 동안 저축을 시켜야 한다. 놀기만 좋아하는 베짱이이니 강제적으로라도. 안 그러면 겨울에 개미들이 열심히 벌어 놓은 것을 빼앗아야 할 테니 말이다. 그래서 연금은 일할 수 있을 때 저축하도록 하여 나중에 일하는 젊은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말자고 하는 제도다. 단순히 젊은이들에게 돈을 거두어 노후 연금으로 지급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행히도 아직은 국민연금은 기여한 만큼 연금을 받아 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기금은 계속하여 적립되어 운용되어 향후 근로자들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2020년 8월 말 기준으로 총 1천15조6천억원이 조성되었다. 그동안 가입자들이 납부한 금액은 610조8천억원이다. 404조8천억원은 가입자들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고 운용만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다. 이를 풀어서 말하자면, 나중에 연금을 지급할 때 404조8천억원만큼 근로자들에게 부담을 덜어준다는 의미다. 그리고 지금까지 연금급여 지출로 225조7천억원이 집행되어 789조9천억원이 쌓여있다. 모두 후세대의 부담을 덜기 위해 준비된 적립금이다.

또한 젊은 세대는 미래의 준비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하는 경향이 높은 반면, 퇴직자들에게는 굳이 미래를 위해 저축을 높인 유인이 적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연금은 대부분 소비로 이어진다. 퇴직 세대의 소비 증가는 다시금 근로 세대의 소득 개선 혹은 일자리의 증가로 이어질 것이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소진될 것으로 추계되는 2060년경 이후다. 소진 이후 그간 가입에 의한 기여분이 고스란히 근로 세대의 부담으로 전가될 것에 대한 우려는 남아 있다. 2040년대 출생자들부터 주요 부담 주체가 될 것이다.

하지만 기금이 소진된다는 사실 만으로 세대 간 불평등이 심화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단지 중요한 문제는 제도가 부담-혜택으로 연결되는 선순환을 어떻게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이다. 각 세대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급격한 인구구조 변화 속에서 우리가, 그리고 먼 미래 세대까지 포함하여 그들이 받게 되는 부담과 수혜를 공평하게 배분하는 세대 간 형평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연금분야가 세대 간 형평성을 논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실제 형평성을 논의하는 이유는 후세대에 대한 배려에 의한 것이 아니다. 세대 간 공평성이 연금제도의 지속가능성의 핵심임이기 때문이다. 이를 인정한다면 연금제도가 지속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세대 간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마련되어야 한다. 향후 넘겨주지도 못할 현재의 쌈짓돈을 아끼고 아낀다고 하다가 빛만을 넘겨주는 상황은 구조적으로 바꿀 때가 되었다. 하루라도 빠른 연금개혁이 시급한 이유다.

다소 먼 이후 세대가 짊어져야 할 문제라고 해서 가볍게 보자는 것은 아니다. 실제 사회보험의 핵심인 국민연금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눈은 그 부산물로 창출된 기금에만 유독 관심을 기울이는 현상을 다소 바꿔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재정방식은 적립식과 부과식 형태를 혼합한 부분적립방식이다. 이는 제도가 도입된 초기에 한시적으로 나타나는 형태이며, 장기적으로는 부과식으로 수렴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연금개혁은 단순하게 기금이 소진되지 않도록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의 부담이 그들이 앞으로 받게 될 혜택에 대비하여 현재의 세대, 그리고 이후 세대들과 차이 없는 부담으로 이후 자신의 퇴직을 대비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부담은 퇴직 후 자신의 혜택으로 이전될 것이고, 다시 더 먼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연결될 것이다. 단순히 어느 한 세대의 일방적 부담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불가피한 인구구조의 불균형으로 먼 훗날의 미래세대가 부담을 덜게 하기 위해서는 그 미래세대의 부모세대부터 준비를 하여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출산율이 혁명적으로 증가하지 않는 한, 모든 사회적 현상에 있어서 다음 세대의 부담은 현재 근로세대에 비해 높아진다. 비단 연금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 대신 연금 수급자들은 그리고 지금의 가입자들은 미래세대를 위해 현재를 조금 더 양보할 마음의 준비를 기대한다. 국민연금은 소진 이후 부담을 가지게 될 2040년대 출생자들, 그리고 그 시기에 기성세대가 될 코로나 이후 출생자들에 대해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혜택을 주기 위한 궁리가 시급하다. 향후 그들이 커서 지금의 기성세대를 기꺼이 부담할 마음이 생기도록 잘 보여야 한다. 미래의 갑에게 미리 잘해 주는 것, 그래서 그들이 부모세대를 거리낌 없이 부양하는 것. 세대 간 평화를 위해서는 그게 최고가 아닐까.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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